믿음의 형제/극악무도한 일본인

일본이 봐야 할 단 한 장의 사진

핵무기 2014. 8. 16. 08:25
일본이 봐야 할 단 한 장의 사진

빌리브란트 독일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했을때
그가 무릎을 꿇으며 한말.

"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일본이란 나라, 지진과 원전사고로 초유의 재앙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또 다시 우리의 오래된 문제를 꺼내든다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조차 일본은 역사 왜곡을 멈추지 않는다
.
아니 오히려, 재앙을 빌미로 삼아 굳히려는 느낌이다.

똑같은 역사의 죄인인 독일인의 태도를 보면서..
일본의 뻔뻔한 태도에 어느덧 길들여져

이렇게까지 으르렁 댈 필요있나? 라고 생각해버릴 만큼 태평해져버리는
나의 윤리의식이 잠들다가 확 깨어난다.


일본에게 이 한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1970127,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해서
무명용사의 묘에 참배하던 중,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한 동안 침묵하더니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사전에 전혀 계획이 없었던 수상의 이 같은 돌발 행동에 수행보좌관들은
물론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진기자까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의심하며 ‘혹 피로 때문에 쓰러진 것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고.

독일 시사주간지인 슈피겔은 이 일에 대해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던
그가 정작 무릎을 꿇어야할 용기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며
이 사건의 상징성을 해석하기도 했다.

(빌리브란트 독일 수상

1913 12 18 (독일) - 1992 10 8 1971년 노벨평화상 수상)

후에 그는 그날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 호텔을 나설 때부터 무엇인가
진심에서 우러나는 표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독일의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곳에서,

나치에 희생된 수많은 영령들을 대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빌리브란트 수상의 이 상징적인 사죄행위는
독일과 주변국들의 신뢰를 회복시켜 주었고,
종내에는 독일 통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
다음해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김근식 제공-

도꾜의 국민학교 학생들이 목총을 들고 황제와 황후의 사진을모신

' 고시에 이사 ' 에다 맹세하고있다 .

이러한 행사는 아이들에게 황제에 대한 복종 심을 심어주는 교육의 일환이다 .

오늘만 미워할래요

속이 다 시원합니다

미국인 .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 세명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무단침입으로 야만인들에게 붙잡혀
곤장 100대를 맞게 되었다.



다행이 야만인 추장은 이들에게 100대씩 맞는 조건으로
단 한가지씩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추장은 3사람을 땅바닦에 눕혀놓고는

너희들 한가지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첫째로 미국인이 말했다.
"제 등뒤에 방석 6장을 올려 주십시요."

추장은 오냐,

그러마 하면서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곤장 100대를 맞았다.

하지만 방석이 너무 얇아
70대째에 방석이 다 찢어져 나머지 30대를 맞곤
아물아물한 정신으로

"그래도 나는 창조력이 뛰어난 민족이야."
하고 중얼거리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과정을 지켜본 일본인
"제 등위에 침대 매트리스 6개를 올려 주십시요."
일본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곤장이 시작됐다.

일본인이 100대를 맞는 동안

줄곧 웃기만 하다 일어났다.

"역시 나는 모방의 기술이 뛰어난 민족이야."
하며 좋아 했다.



야만인 추장은 한국인을 향해
"자, 네 소원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한국인은 쓱~ 웃으며

" 저 일본놈을 제 등위에 올려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