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쓸 수 없는 만 원
철수씨는 속주머니에서 발견한 만원짜리 지페 한장이
몇 달전에 바로 '그 돈'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친구 전화번호를 메모해 두었던 그 만 원짜리 말입니다.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아내 민지 씨 앞에 내밀었습니다.
어젯밤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던 아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돈이예요?"
"당신 요즘 너무 핼쑥해진 것 같아서,
내일 혼자 고기 부페에 가서 쇠고기나 실컷 먹고 와요."
철수 씨는 아내의 손에 만 원을 쥐어 주었습니다.
아내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눈 시울만 붉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민지 씨의 시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노인정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시아버지를 배웅하던 며느리는,
그날 따라 시아버지의 어깨가 축 늘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님,제대로 용돈도 못드리고 정말 죄송해요.
저... 적지만 이 돈으로 친구분들과 약주나 한 잔씩 드세요."
민지 씨는 앞치마에서
만 원을 꺼내어 시아버지한테 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을 힘겹게 끌어나가는
며느리가 안쓰러웠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만원을 쓰지 못하고,
노인정에 가서 실컷 자랑만 했습니다.
그리고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습니다.
몇 달 뒤에 설날이 찾아왔습니다.
"지연아,할아버지한테 세배해야지."
할아버지는 손녀딸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였습니다.
조막만하던 녀석이 어느새 자라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것도
신기 하기만한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놓은 만 원을
손녀 딸에게 세뱃돈으로 주었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세뱃돈을 받은 손녀딸은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리는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엄마,책가방 얼마야?"
민지 씨는 딸의 마음을 알고는 방긋 웃었습니다.
지연이는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만 원을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가 가지고 있다가 나 예쁜 책가방 사줘.......,"
그날 밤,민지 씨는 또 남편의 잠꼬대를 들었습니다.
안하던 잠꼬대를 요즘 들어 매일 하는 것이,
아마도 많이 힘든가 봅니다.
그런데도 남편의 도시락에 신 김치밖에 싸줄 수가 없는 것이
무척 속상했습니다.
민지 씨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의 속주머니에
딸 지연이가 맡긴 만원을 넣어 두었습니다.
"여보, 오늘은 맛있는 것 사서 드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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