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9회)

핵무기 2012. 6. 10. 22:27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9회)◈
♣ 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
제시카 탠디·모건 프리먼 주연, 99분, 미국, 1989년.-


◆나이를 먹으면 편견을 벗기가
더 쉬워진다 ◆


  먹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한 가지, 
바로 나이일 것이다. 몇 살이든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인데 나 말고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 나이듦의 쓸쓸함이 있다. 노년이 되어갈수록 
그 간극은 더 벌어져만 간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의
여주인공은 70대 데이지 할머니(제시카 탠디)다. 이때껏 
그녀는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다. 이것은 자유로움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자유의지대로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니 새 차를 몰고 나서자마자 수풀에 
처박히는 사고를 내고 나서, 이 자존심 강한 할머니가 얼
마나 황망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들(댄 애크로이드)이 고
용해준 운전기사 호크(모건 프리먼)를 죽기 살기로 거부
하는 그녀의 숨은 뜻도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속내에는 
자율성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평생 좁은 세계에서 살아온 꼬장꼬장한 유대인 노파는 
흑인 운전기사와 함께 지내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고 우
정을 쌓아간다. 우정이 인종·성별·계급을 초월할 수도 있
는 감정이며 친구가 상대의 고통에 대해 무감할 수 없는 
사이를 의미한다면, 폭설에 고립된 데이지를 위해 커피
와 도넛을 싸들고 방문한 호크, 호크와 함께 마틴 루서 
킹목사의 연설을 들으러 가는 데이지야말로 더없이 좋
은 친구일 것이다. 새로운 친구와 같이 보낸 데이지의 
70대는 평생 가져온 편견에서 벗어나 더 넓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나이
에 가능한 일이냐고? 그 나이에 닿아보지 못한 이들
은 반신반의하겠지만, 이미 많은 것을 겪어본 노년
기 야말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더 유연하고 
더편안해질 수 있는 때임을 그녀가 몸소 증명해준다.
  영화의 마지막은 세월이 흘러 90대가 된 데이지가 
요양소에 찾아온 호크를 맞는 장면이다. 그녀는 오랜 
친구가 떠먹여주는 파이를 얌전히 받아먹는다. 그리고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노라고. 인생 마지막 날까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숙제다.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


'심득경 초상' - 윤두서 그림, 비단에 채색,
160.3×87.7㎝, 171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요절한 아저씨, 기억으로 되살려…
유족 울음바다 ◆
    소동파가 쓰던 두건을 머리에 얹고 주름이 드러난 도포 속에서 두 손을 맞잡은 이 사내는 조선 후기의 유생 (儒生) 심득경(沈得經·1673~1710)이다. 이름이 좀 낯설다. 대신 그 집안을 들먹이면 알 만하다. 심득경의 어머니가 유 명한 시조 시인 고산 윤선도의 딸이다. 윤선도는 또 조선 초 상화의 백미이자 국보인 '자화상'을 그린 윤두서의 증조부다. 심득경은 나이가 다섯 살 많은 윤두서(1668~1715)의 아저씨 뻘이었다. 두 사람은 진사시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살지 않았다. 함께 시문(詩文)을 읊조리며 초야의 다정한 짝 으로 지냈다. 따라서 이 초상은 당연히 윤두서가 그렸다. 그림의 위아래에 글이 많다. 그중 심득경의 벗이던 서예가 이서(李�G敍·1662 ~?)가 지은 글이 눈에 든다. 읽어보면 심득경의 생김새와 됨됨이가 떠오른다. '눈이 맑고 귀가 단정하며 입술이 붉고 이빨이 촘촘하다'. 그 모습이 초상화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품성은 어떤가. '물에 비친 달은 그의 마음이요, 얼음 같은 옥(玉)은 그의 덕이다'. 입에 발린 칭찬으로 듣기에는 이어지는 글이 단 호하다. '잘 묻고 힘껏 실천했으며 깨달은 것은 확고했다. ' 한마디로 겉과 속이 딱 맞는 인물이란 얘기다. 그림을 그린 윤두서의 소회는 맨 아래에 적혀 있다. '숙종 36년(1710) 11월에 그렸다. 이때가 공(公)이 돌 아가신 지 넉 달째다. 해남(海南) 윤두서는 삼가 가다 듬고 마음으로 그린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그렸다는 토로다. 심득경은 마흔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떴다. 애통하기 그지없던 윤두서는 4 개월 뒤 정신을 수습하고 붓을 들었다. 피붙이와 다름 없던 심득경의 이목구비야 눈에 선했을 테다. 초상화 를 받은 심득경의 유족은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본 듯이 통곡했다. 저 붉게 타오르는 입술! 윤두서는 식은 입술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김영택 화백의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프랑스 파리 사크레 퀴르 대성당♣


-종이에 먹펜, 41X58㎝, 2012- .

파리, 가장 높은 곳 순백의 랜드마크
전후 상처받은 민심 희망과 긍지로 바꾸다

  지난 2001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준공식에서 대통령이 
건설회사 사장은 소개하면서 설계를 한 건축가는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설계자인 류춘수 건축가는 “출판기념회에서 
출판사 사장은 소개하고, 저자 소개를 빼놓는 격”
이라며 잘못된 관행을 지적했습니다.
 프랑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 건축물마다 건축가 
이름이 소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펠탑처럼 
설계자의 이름이 건물명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역사는 글로 쓸 수 있지만 건축으로도 쓸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몽마르트르 언덕은 해발 129m밖에 안 되지만 평지인 
파리에서 제일 높은 곳입니다. 이 언덕에 사크레 퀴르 성당이 
눈이 부시도록 하얀 모습으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파리 시민에게 희
망을 되찾아 주기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에 성당을 세우기로 
합니다. 총 77개 응모작 중 ‘폴 아바디’의 비잔틴식 
작품이 채택되어 1875년 공사를 시작합니다.
 약한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 40년이 걸렸습니다. 
공사비도 일곱 배나 늘었으나 모두 시민이 부담하여 
1919년 완공을 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희어지는 돌로 
만든 높이 83m, 폭 50m의 거대한 돔은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랜드마크입니다.
 성당 계단에 앉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본 뒤 성당 
왼쪽으로 돌아서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 주는 테르트르 
광장을 둘러보면 파리의 절반은 본 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