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신문에 게재되 미술 문화 이야기.

핵무기 2012. 7. 22. 17:51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15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KAIST 서양미술사 교수)



-파올로 베로네세 '가나의 결혼식'-
캔버스에 유채, 666×990㎝,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 비싸고 호화로운 예식…
결혼의 참의미는 어디에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중 가장 큰 그림은 
바로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1528~
1588)가 그린 '가나의 결혼식'이다. 세로 7m, 가로 10m에 육박
하는 이 거대한 화면 안에서는 야외에 내놓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130여명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라는 마을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는데 연회가 끝날 
무렵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성모 마리아의 부탁을 듣고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가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일으킨 기적이자 그가 이후에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며 희생당할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로네세는 그 기적의 의미보다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연회를 그려내는 데 주력했다. 테이블
은 화려한 도자기와 값비싼 은식기, 섬세한 유리그릇으로 
가득하고, 하객은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호화롭게 치장했다. 테이블 위아래를 여유롭게 돌아
다니는 애완견들조차 말끔하게 다듬고 온 이 연회는
당시 베네치아인들의 호사스러운 취향을 잘 보여준다.
  수도원의 식당 벽에 걸기 위해 이 그림을 주문했던 
베네딕트 수도회는 반드시 해외에서 수입한 값비싼 안료를 
사용하도록 계약서에 명시했다. 내용뿐 아니라 그림 자체도 
비싼 사치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물질의 향연 
속에서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는 중앙에 홀로 고요히 
앉아 있는 예수뿐인 듯하다. 어쩌면 그는 포도주 정도야 
얼마든지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이 사람들에게 괜히 
기적을 보여주었나 하고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


◆"작가가 주인공을 맘대로 죽이다니…
타자기 줄테니, 살고 싶으면 다시 써" ◆


'미저리'… 롭 라이너 감독,
캐시 베이츠·제임스 칸 주연, 107분, 미국, 1990년.


  상대방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성을 향해 
흔히 '미저리 같다'는 표현을 쓴다.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미저리(Misery)'
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배우 캐시 베이츠가 열연한 그 
영화의 여주인공 이름은 미저리가 아니라 애니다. 영화 속
에서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애니는 간호사 출신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는 사이코 패스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는 한 소설을 너무도 사랑하는 
애독자다. 그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미저리다.
  눈길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한 남자를 구출했을 때, 
그녀는 그가 자신이 오랫동안 열독해온 소설 '미저리'의 
작가 폴 셸던(제임스 칸)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기뻐한다. 
처음에 폴을 대하는 애니의 태도는 무한한 존경과 설렘, 애정
이 뒤범벅된 것이었다. 그러나 애니가 새 책의 결말을 읽고 난 
뒤 모든 것이 변한다. 연작소설 '미저리'의 마지막 권에서 여주
인공 미저리가 죽고, 시리즈는 비극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애니
는 부상한 작가 폴을 감금하고 강제로 타자기를 안긴다. 소설을 
다시 쓰라는 거다. 그녀의 소원은 죽은 미저리가 다시 
살아나 행복해지는 것, 한 가지뿐이다.
  작가가 창조한 뒤 무수한 독자들에게 던져진 하나의 텍스트는 
결국 누구의 것일까. 작가 폴과 독자 애니는 미저리의 운명을 
두고 정면충돌한다. 작가는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다.
평론가들에게 대중소설이라고 폄훼된 '미저리' 시리즈를 대
충 끝내고 차기작에 집중하기 위해 주인공을 죽이는 안일한 
결말을 택했으면서 말이다. 그에 반해 산속에 홀로 은둔하
는 애니에게 미저리는 동일시하고 싶은 순애보의 주인공
인 동시에 일상의 소중한 한 줄기 위안이었다. 지나치게 
순수한 독자인 그녀는 옆에서 숨 쉬던 미저리의 돌연한 
비극적 종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둘 중 누가 미저리를 
더 진심으로 사랑했는가? 독자는 작품의 어디에 서 
있을 수 있는가? 이제는 기괴한 집착증 환자이자 
살인마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애니는 수용미학
(受容美學)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다.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 옳은 일에 목숨을 걸었던 '통치자의 일가친척' ◆



'이성윤 초상'…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78.4×106.4㎝, 1613년, 국립고궁박물관 기탁 보관.'
    왕조(王朝)가 아닌 지금도 '상왕(上王)'이니 '대군(大君)' 이니 하는 남우세스러운 말이 돈다. 최고 통치자의 집안사 람이 검찰에 불려다니는 요즘 꼴을 보면 임금의 친족은 으 레 저랬을까 싶다. 조선 중기의 왕실 인물인 이성윤(李誠胤· 1570~1620)을 보자. 그의 고조부는 성종이고, 광해군은 그 의 육촌 아우다. 그는 이처럼 신분이 높았지만 소박한 선비 처럼 굴었다. 임진왜란이 나자 이성윤은 피란길에 죽음을 각오하고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셨다. 전쟁을 지휘하던 세자 광해군을 따라다니며 지킨 공로로 이등공신(二等功臣)에도 올랐다. 이 초상은 공신이 되면서 하사받았다. 이성윤은 높이가 낮은 오사모에 구름무늬의 검정 단령(團領)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손을 마주잡았다. 공신 초상은 이처럼 포즈가 다 비슷하다. 구름과 기러기와 모란이 새겨진 흉배(胸背), 금빛 장식에 빛나는 각대(角帶) 로 보면 그의 품계는 문관2품이다. 바닥에 수놓인 깔개는 화 려하고,여덟 팔 자로 벌린 두 발은 의젓하다. 단령의 옆트임 사이로 보이는 청색과 녹색 자락은 속에 껴입는 밑받침 옷 이다. 왕손으로 태어난 이성윤은 실생활이 호사롭지 않아 입살에 오를 일이 없었다.잡기를 멀리했고, 입은 옷을 팔아 책을 샀다는 기록도 보인다. 생김새에서 성품이 얼추 비친다. 가늘게 다문 입술이 단호하다. 짙거나 빽빽하지 않은 수염은 부드럽게 구부러진다. 콧잔등을 보니 살짝곰보다. 속눈썹이 성글어 눈 동자가 외려 선명한데, 눈초리가 예리해서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의 의기는 가을서리 같았다. 즉위한 광해군이 이이첨과 더 불어 난정(亂政)을 거듭하자 종실 신분으로마침내 결단한다. 그는 상소문을 썼고 앞머리에 이름을 올렸다. 뒷날 송시열이 "피로 쓴 글에 간사한 자들은 뼛속까지 오싹했다"고 평했다. 이성윤은 그 일로 귀양갔다. 그는 가시울타리가 쳐진 배소(配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