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

핵무기 2012. 9. 1. 18:35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21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KAIST 서양미술사 교수)



-제임스 로젠키스트 ‘대통령 선거’-
1960~1961년, 목재판 위에 유채, 228×365.8㎝,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소장. -


◆ 말이 정말 저렇게 뛸까? ◆

무거운 먹구름 아래 바람을 가르며 네 마리의 경주마가 
질주하고 있다. 기수들이 채찍을 휘둘러 속력을 높이는 그 
긴박한 순간에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듯이 허공 중에 떠있
는 말들의 긴장된 근육과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뚜렷하게 
묘사된 이 그림은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
(Theodore G�[ricault·1791~1824)의 '엡솜 더비 경마장'
이다. 엡솜 더비는 영국 남부의 엡솜에서 열리는 경마
대회다. 올해 재위 60주년을 맞이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식 축하 일정으로 처음 찾은 곳이 바로 엡솜
더비일 정도로 이 대회는 영국 경마의 
전통과 권위를 상징한다.
 제리코는 화가로서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말에 
매료되었다. 프랑스 왕실에서 일하면서 국왕의 마구간에 
드나들었던 그는 뛰어난 경주마들의 골격과 근육,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칠고도 아름다운 움직임을 면밀하게 연구
하고 화면에 옮겨 담아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은 그가 
잠시 영국에 방문한 동안 한 경주마 상인의 
주문을 받고 그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틀린 그림'이다. 
말은 이처럼 네 발을 앞뒤로 활짝 펴고 날아오르지 않는다. 
전력 질주를 할 때도 늘 발굽 하나는 바닥을 향해 있고, 네 
발굽이 모두 바닥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순간에
는 다리가 전부 안으로 오므라들지, 밖으로 펴지지 않는다. 
나는 듯한 제리코의 경주마는 '사실'이 아니라 단지 질주의 
'느낌'이었을 뿐이다.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이러한 
사실은 이 그림이 완성되고 50여 년이 지난 후, 한 사진
가가 달리는 말의 연속 동작을 카메라로 잡아내고서야 
밝혀졌다. 새로운 기계 덕분에 현대인은 과거의 
인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 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


◆ 'B급'이 우스운 이유를 따지지 말라 ◆


'오스틴 파워: 나를 쫓아온 스파이'
- 제이 로치 감독, 마이크 마이어스
·헤더 그레이엄·마이클 요크 출연, 95분, 미국, 1999년.-

 오스틴 파워(마이크 마이어스)는 영국의 비밀요원이다. 
세계 정복을 꿈꾸며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 닥터 이블
(Dr. Evil)을 물리치려고 종횡무진 애쓰는 것이 영화 '오스틴
파워:나를 쫓아온 스파이(Austin Powers: The Spy Who Sha
gged Me)'의 기둥 줄거리다. 그러나 이 영화의 히어로에게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악(惡)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SF영화 속의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그는 근엄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스틴파워는 촐랑대고 방정맞고 경망스럽다. 
그 외에도 우스꽝스러운 태도를 뜻하는 어떤 종류의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될 정도다.
 또 예쁜 여자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신혼의 아내가 
사실은 적(敵)이 보낸 사이보그라는 걸 알게 되자 슬픔에 
잠기기는커녕 다시 독신의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에 겨워 나
체로 집안을 행진한다. 그 와중에도 주요 부위를 절묘하게 가
리는 센스가 보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한다. 물론 이 '오스틴 파
워' 2편의 부제인 '나를 쫓아온 스파이'가 007 시리즈의 '나를 사
랑한 스파이'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것이며, 황당무계하고 멋지
지 않은 주인공이 제임스 본드 같은 냉전시대의 강하고 멋진 남성 
히어로를 조롱하는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오스
틴 파워가 화면에 등장하기만 하면 관객이 배를 잡고 웃는 이유
는 비평가에의해 논리정연하게 해석될 만한 어떤 희극적 느낌
에 고무되어서가 아닐 것이다. 관객은 하도 기가 막히고 허
무맹랑해서, 그리고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웃을 뿐이다.
 요즘 가수 싸이의 신곡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화제다. '강남스타일'과 오스틴 파워는 
이른바 'B급 정서'의 맥락을 정면으로 관통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말춤' 등의 성적인 요소도 능청스러운 유머 속에 아무렇
지않게 쓱쓱 버무린다. 보는 이는 복잡하게 사유할 필요 없이 머
리를 맑게 텅 비우고 그저 넘실대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
면 된다. 무릇 헛되고 헛된 것은 무용(無用)하다고 알려져 왔
던바, 이무용함을 현실에 구현한 B급 캐릭터들은 차마 그렇
게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시원한 대리 만족을 주는 존재다.


♣ 헌동현의 모던 타임스 ♣


◆ 日王 "항복할테니 통치권만은 보장을" ◆


戰犯 히로히토 - 1943년 4월 29일 대본영(大本營)에서
열린 육해군 최고위 지휘관 회의 모습. 가운데가 침략전쟁의
주범 히로히토 일왕이다. 패전 이후 1975년까지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여덟 번이나 참배하며 군국(軍國) 일본의 망령을 다시 불러냈다.
 
 1975년 2월 잡지 '문예춘추'에 실린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동
생 다카마쓰(高松)의 회고담은 충격적이다. "어떻게 하면 잘 패
할수 있는가에 전쟁 목적을 두어야 한다." 패전이 임박한 1944
년 6월 그는 형의 무책임한 말에 놀라 고노에(近衛) 당시 총리
대신과 히로히토의 퇴위를 상의한 일이 있음을 털어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승산 없는 싸움임을 잘 알고 있었던 
히로히토는 그러나 이듬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7만 명 이상의 생령(生靈)을 잿더미로 만들
었어도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한 발 더 떨어진 9일에야 그는 
자신의 국가 통치권을 보장하는 조건부 항복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연합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천황제의 존폐 여부를 국민의 선택에 걸었다.
 8월 15일 정오 일왕의 육성은 전파를 탔다. 
"짐은 국체(國體)를 호지(護持)하려는 충량(忠良)한 
그대들 신민(臣民)의 적성(赤誠)을 신뢰한다. 확고하게 
신주(神州)의 불멸을 믿고, 맹세코 국체의 정수를 앙양
하라." 항복 선언의 그날 히로히토는 '국체', 즉 살아 있
는 현인신(現人神)인 천황이 통치하는 국가 체제를 고수
할 것을 황국(皇國)의 신민들에게 명령했다. 점령 초 미
국은 일본인 스스로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개혁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그해 12월 '천황제 유지'에 94.8%가 찬성표를 
던진 여론조사 결과는 일본인들이 종교와도 같은 천
황제 이데올로기에 얼마나 깊이 주박(呪縛)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왕을 전범(戰犯)으로 재판하려면 100만의 군대를 
재투입해야 할 것이다." 1946년 1월 연합국총사령관 맥
아더의 말이 웅변하듯, 미국이 일왕을 국가의 상징으로 
남겨 둔 주된 이유는 일본인들의 천황제에 대한 지지 때
문이었다. 일본인들이 일왕의 치세가 영원히 지속되길 기
원하는 '기미가요'를 목청 높여 제창하고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물인 황군(皇軍)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자랑스
럽게 내흔드는 오늘, 일본 정부는 주요 국정에 대한 각료들
의 내주(內奏), 국회 개원식 출석, 외국 원수와의 친서 교환 
등 평화헌법에 들어 있지 않은 일왕의 실질적 국가원수화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히로히토의 지상명령인 '국체 호지
'는 여전히 일본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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