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핵무기 2012. 11. 10. 12:33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31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서양미술사 교수)



- 조토 디 본도네 '최후의 심판'(아래 일부) -
1305년 무렵, 프레스코화,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


◆ "천국으로 보내주소서
예배당을 바칠 테니"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혁신적인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6?~1337)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파도
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 내부의 벽화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붉은 건물에 내부 또한 둥근 터널처럼 단
순한 구조를 가진 이 예배당은 부유한 은행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1303년에 가족 예배당으로 헌당
(獻堂)하여 그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다.
 조토는 벽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입구 위의 
벽 전체에는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바로 그 최후
의 심판 장면에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등장한다. 
중앙의 권좌(權座)에 앉아 축복받은 영혼을 천
국으로 끌어올리고, 저주받은 영혼은 지옥으로 
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성모 마리아
에게 붉은 건물, 즉 이 예배당의 모형을 바치며 
자비를 구하는 자가 엔리코다.
 은행은 스크로베니 집안의 가업(家業)이었다. 
그러나 욕심을 내다보면 건전한 은행업에서 부당한 
폭리를 취하는 고리대금업으로 변질되는 것도 금방
이다. 사실 엔리코의 아버지 리지날도 스크로베니
는 기독교에서 죄악시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 때문에 단테가 '신곡(神曲)'에서 
'리지날도가 지옥에 있더라'고 쓰기도 했다.
 엔리코는 심판자인 아들 예수보다는 이해심이 
많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당대 최고의 화가가 장식한 
예배당을 성직자의 어깨에 얹어 바치는 것으로 어떻
게든 지옥행을 면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한발만 더 가면 바로 끔찍한 마귀가 들끓고 불길이 
치솟는 지옥이니 이를 피할 수만 있다면 건축비가 
얼마든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지금 엔리코가 
어디에 있는지는 신(神)만이 알 것이다.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
(미술평론가)


◆ 개 한 마리 목청 높이자
동네 개들 따라 짖네 ◆


- '달 보고 짖는 개'
- 김득신 그림, 종이에 담채, 25.3×22.8㎝,
18세기, 개인 소장. -


 그림 왼쪽에 멋을 부려 흘려 쓴 글씨가 있다. 
운율을 갖춘 시인데, 뜻을 풀이해보면 문득 웃음이 
난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네. 만 마리 
개가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는구나. 아이에게 문밖에 
나가 보라 시켰더니, 달이 오동나무 가장 높은 가지
에 걸렸다 하네.' 개들은 그렇다.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들이 따라서 짖는다. 개 소리는 갈수록 
요란해진다. 영문도 모르고 짖는 대부분의 개와 
달리 맨 처음 개가 짖었을 때는 꼬투리가 있었을 
테다. 그림에서는 달이 휘영청 
떠올라서 그렇단다.
 웃기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작품이다. 김득신은 
화원(畵員)을 줄줄이 배출한 개성 김씨 가문인데 
위아래 대(代)가 다 화가일 만큼 내림 솜씨를 
뽐냈다. 이 그림도 실소(失笑)가 터지는 
풍자화다. 되지도 않은 개소리를 
에둘러 나무란다.
 개 짖는 소리를 우스개 삼은 글은 꽤 많다. 
조선 중기 문신 이경전(李慶全)이 어릴 때 아버지 
무릎에 앉아 읊었다는 시가 바로 그림 속의 글과 
빼닮았다. 중국 개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후한 시대의 정치에 관한 책 '잠부론(潛夫論)'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한 마리 개가 짖는 시늉을 
하면 백 마리 개가 소리 내 짖고, 한 사람이 
헛되게 전하면 백 사람이 사실인 양 전한다.'
 그림을 다시 보니, 개한테 죄를 다 뒤집어씌
우기가 미안하다. 오동잎 널찍한 시골의 가을 
한밤, 달은 덩두렷하고 초가집 사립문은 옹색하다. 
개 짖는 소리에 뛰쳐나온 아이가 두리번거리고 검
둥개는 나뭇가지에 달이 걸리자 턱을 쳐들고 컹컹 
짖는다. 녀석의 앉은 품새가 얼핏 '생각하는 개' 
같다. 놈이 무슨 흥이 있어 달빛에 취할까마는 
왠지 미련퉁이는 아닐 성싶다. 덜된 놈은 언제
나 덩달아 짖는 개들이다. 상주보다 서러운 
곡(哭)쟁이는 눈꼴이 시린 법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라 안에 잡소리가 넘쳐
난다. 동네 개들이 듣고 따라 
짖을까 걱정스럽다.
♣ 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
(소설가)


◆ '왼쪽 눈꺼풀'만으로 세상을 끌어안기 ◆


-'잠수종과 나비'
줄리앙 슈나벨 감독, 마티유 아말릭·엠마누엘
자이그너 주연, 112분, 프랑스·미국, 2007년.

  여기 두 문장이 있다. 1번, 왼쪽 눈을 천천히 
껌뻑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번,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왼쪽 눈은 천천히 껌뻑일 
수 있다. 이것은 실화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Le 
scaphandre et le papillon)'의 주인공 장 도미니
크 보비(마티유 아말릭)는 세계적 패션 잡지 '엘르'
의 프랑스어판 편집장이었다. 삶은 화려했고 사람
들은 그를 동경했다. 그는 언제나 바빴고 활기찬 
인생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의식은 돌아왔으나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뇌졸
중에 따른 감금증후군(뇌의 명령을 몸이 인식하
지 못하는 병)이라고 했다. 아니다. 몸의 딱 한 
곳만은 움직일 수 있었다. 불행이라고 할까, 
다행이라고 할까. 그곳은 왼쪽 눈꺼풀이다.
 여느 지식인처럼 성격이 냉소적인 보비는 
처음에 1번을 고른다. 세상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유일하고 희미한 창구에 대해 차라리 없는 편이 낫
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바람은 오로지 하나였다. 
눈 깜빡임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
쳐준 언어 치료사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죽고 싶다."
 그러고 나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느냐고? 
그러지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간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니 현실과 함
께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런다.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도 그대로이고 익살스러운 본성도 남아있다. 
그는 대단히 절망적으로 변하지는 않았고 그렇
다고 가망 없는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보
비는 장애를 진심으로 극복하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도 아니고, 신(神)에게 구원받는 
기적의 주인공도 아니다. 대신 그는 환상의 
세계를 개척한다. 종(鐘) 모양의 잠수복인 
잠수종을 입고 심해(深海)로 들어가고, 
어디든 팔랑이며 부유하는 나비의 
시선으로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는 그저 나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하필이면 불운하게 그에게 벌어졌을 뿐이지만, 
그가 침대에 누운 채 하루에 반쪽 분량씩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왼쪽 눈을 깜빡거려 완성한 
진솔한 병상 일기는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
(경희대 역사학 교수)


◆ 地位 지향 사회가 낳은 '입시 소용돌이' ◆


- 수능날의 '고전적 풍경' -
1993년 8월 20일 1차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던
고사장 문 밖에서 학부모들이 자녀의 고득점을
기원하고 있다. 수능을 1·2차로 나눠 두 번 본 유일한 해였다. -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제도는 한 해도 
같은 적이 없었지만, 그 변천 과정의 특징은 둘로 
압축된다. 하나는 대학별 단독시험제,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 같은 국가고사제, 예비고사와 본고사, 
무시험 전형 등 학생 선발에서 대학의 자율과 국가의 
간섭이 교차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입학시험 시
기도 전기와 후기, 수시와 정시로 나누었는가 하면 선
시험·후지원 또는 선지원·후시험의 방법도 실험해 보
는 등 온갖 수단이 총동원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에 '개혁'이 뒤따랐어도 백약(百藥)이 무효였다. 
그 이유는 우리 특유의 역사·문화적 전통과 
결부해 살펴볼 때 드러난다.
 입시 때면 떡을 수험생에게 먹이고 대학 교문에 
붙이는 기원(祈願) 행위는 생각보다 유서가 깊다. 
과거(科擧) 보러 가는 길 내내 떡을 먹고 마을 어귀
의 당산목(堂山木)에도 급제를 축원하며 떡을 붙인 
조선시대 서생(書生)들의 관행에서 유래하였으니 
말이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전시(戰時)연합
대학을 운영하고, 1960년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
으로 불리게 할 만큼 민초(民草)들의 교육열은 강했
다. 전통시대 지위 상승의 사다리였던 장원급제의 
교지(敎旨)가 대학 졸업장으로 대체된 광복 이후 
현대판 신분제도인 학벌(學閥)에 편입되고자 하
는 민초들의 열망이 식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OECD 가입국 중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오늘 우리는 여전히 학벌을 좇는 돌개바람의 회전
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여러 조직
은 조직 자체나 구성원들이 중심축을 향해 상승
하는 흐름에 참여하려 하는 아메바와 같다"며 
한국 사회의 작동원리를 중앙권력을 향해 모든 
성원이 휘몰아쳐 달려드는 '소용돌이(Vortex) 
구조'로 꼬집은 미국 외교관 출신 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의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입시 철이면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에 축원의 발길이 줄을 잇는 
까닭이 부처님이 쓰고 있는 갓이 지위를 보장하는 
징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을 
보면 아직 한국은 '지위 지향형 사회'가 분명하다. 
현상만 보는 정치·사회적 처방전으로는 학력사회
의 병폐를 치유할 수 없는 이유이다.

'믿음의 형제 > 보고 즐길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단한 볼거리(슬라이드)  (0) 2012.11.11
에버랜드 성대 모사 달조  (0) 2012.11.11
경치를 함께 즐겨요.  (0) 2012.11.09
7개의 폭소 몰카  (0) 2012.11.09
화류춘몽  (0) 2012.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