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6.25의 기록 영상

호국기장과 종군기장은 무엇이 다른가?

핵무기 2012. 11. 16. 20:10

호국기장과 종군기장은 무엇이 다른가?

호국기장이나 종군기장이나 기장은 기장일 뿐이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11, 13일 전체회의에서 6,25참전 유공자

전원에게 호국기장 을 수여하기로 의결했다고 한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무려 62주년이 지난 지금 생명을 담보로 호국

공로를 세 운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아는 체라도 하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당사자인 우리 호국노병은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웬 일일까.

참으로 할일 없는 자들의 발상이 아닌가.

종군기장의 훈격 에다 덧칠이나 하여,

엄연한 국가유공자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짓이나 하고 았으니----,

모두 늙어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호구지책이 막막한 그들에게 차라리

기장 제작비로 계상한 32억원을 현금으로 나눠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과연 정치하는 사람들이 고령의 노병들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지

나 알고 행동하는 것인지 생각하기에도 참담하다.

우리는 자난 10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

‘6,25 참전용사 전원에게 국가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하는 공약을 요청’ 한바 있으며, 아울러서 ‘최저생

활비 이상으로 하는 생계비지원도 공약을 요구’ 한바 있다.

이에 대한 회답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훈장과 기장의 훈격이 얼마

차이가 있는 지는 관계하와 위정자들은 잘 알고 있을 터,

살아가기조차 막막한 多數(많은) 6.25참전 老兵들에 대하여 도움을

주지는못할 망정 60여년이 世월이지난 지금 엄연한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기장수여란 농담 도 아닌 우롱일색임을 떨칠 수 없다.

모든 매사는 형평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엄연한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기장수여라니 국가유공자라면서

위상을 격하시키 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차라리 폐지하고, 없던 것으로 하여 국가예산 32억원이라도

보존시켜 고아원구 비로 써라.

국방위 위원들이여 각성을 촉구한다. 호국노병들의 경고 명심하라.

2012, 11, 14.

구국300정의군결사대

300Righteous National Forces Of Korea

부조리 부정부패 척결ㆍ정의사회구현

제2의 6.25전쟁 만은 막아내야 한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 돌아올 깁니다.”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 (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