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미술 문화

핵무기 2012. 12. 10. 22:38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35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서양미술사 교수)



- 앙투안-장 그로 '에일라우 전쟁터의 나폴레옹' -
1808년, 캔버스에 유채, 521×78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이겨도 져도 전쟁은 비극…
王들이여, 창칼을 탐하지 마오 ◆

  
  1807년 2월 8일, 나폴레옹은 폴란드의 에일라우에서 
그의 '대육군(大陸軍)'을 이끌고 러시아를 상대로 혈투
를 벌였다. 전투는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도 
무려 2만5000명에 이르는 병력을 잃었으니, 
사실상 이 전투의 승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에일라우의 승리를 기념하길 원했던 
나폴레옹은 큰 상금을 걸고 회화 공모전을 열었다. 
경쟁자 25명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 이는 나폴레옹
의 종군 화가로 이미 황제의 총애와 명성을 한꺼번에 
누리던 앙투안-장 그로(Antoine-Jean Gros· 1771
~1835)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실제로 에일라우에서 
입었던 망토와 모자를 그로에게 하사했고, 그로는 
죽을 때까지 그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로는 경연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다가 당시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었던 비방-드농 남작의 
종용에 못이겨 참여했던 것이었다.
  그로는 나폴레옹을 승리를 자축하는 무자비한 
군주가 아니라 눈 덮인 대지에 쓰러져 고통으로 신음
하는 병사들을 하나하나 진심으로 보살피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포연이 자욱한 공기와 암울한 겨울 
하늘, 그 아래 겹겹이 쌓인 시체는 잔인할 정도로 생
생해서 누구도 이 그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실제로 "지구상의 모든 왕이 이 
모습을 본다면 전쟁과 정복을 그토록 탐하지 
않을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에일라우의 교훈을 너무 빨리 잊었다. 
1812년, 또다시 러시아의 동토(凍土)를 침공한 그의 
군대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때 나폴레옹의 기세를 
꺾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불패(不敗) 명장이 바로 그 
유명한 '동장군(Winter General)', 
즉 매서운 추위였다.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
(미술평론가)


◆ 남길 게 그리 없어
지린내를 남기셨는가 ◆


- '소나무에 기대어' -
오명현 그림, 종이에 담채, 27×20㎝,
18세기, 선문대 박물관-

  아래로 휜 소나무 외가지가 멋들어지다. 
의지가지없는 덩굴은 축 늘어졌다. 사내 하나가 
지금 수상쩍은 거동을 한다. 휘청거리는 몸을 소나
무에 기댔는데 한쪽 발이 삐끗, 자칫 모로 쓰러질 판
이다. 보아하니 눈꺼풀은 천근만근, 돌아가는 형편을 
알 리 없다. 꼴사나운 건 갓이다. 걷는 길에 어느 집 
담벼락을 들이박았는지 챙이 뒤틀리고 모자가 짜부
라졌다. 몸을 다 구긴 처지에 얼굴인들 하마 성할까. 
망건 사이로 머리카락이 풀풀 날리고 살쩍과 나룻
은 아주 수세미다. 곤드레 취한 사내, 민망한 
행색 그대로 딱 걸렸다.
  무엇보다 그의 신분이 궁금하다. 
대낮에 저토록 마셔댔으니 말이다. 
차려입은 옷가지로 보면 그는 무지렁이가 아니다. 
소매가 넓고 끝자락이 곧으며 옆트임을 한 겉옷은 
중치막이다. 허리에 두른 끈목과 무늬가 들어간 
갓신까지, 태깔이 변변한 걸로 헤아리건대 그는 
사족(士族)이다. 오른손에 쥔 막대는 지팡이치고 
가늘다. 위쪽이 담배통 모양이라 장죽이 맞겠다. 
담뱃대가 길어야 아랫것을 시켜서 연초쟁이기가 
편하다. 술에 절어서 그렇지 그는 어디 가서든 
거드름 피울 만한 지체다.
  사내가 수상쩍다고 했다. 왼손의 위치가 
그렇단 얘기다. 그는 느슨해진 매듭을 잡았다. 
고의를 여미는 동작인데, 그게 수월치 않다. 이쯤 
되면 알 만하다. 그는 가득 찬 방광을 막 비웠다. 
딴에는 솔잎 가려진 데를 조준한 모양이다. 
어찌나 시원한지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림을 그린 이는 18세기 어름 평양 출신의 화가 
오명현(吳命顯)이다. 이력이 덜 알려진 그는 전해지
는 작품도 여남은 점 정도다. 얼굴 표정이 이처럼 
생생한 풍속화도 드물다. 화가는 남들 모르는 
곳에서 쌍되게 노는 양반을 풍자했다.
  외밭에서 들메끈 매지 말고, 배나무 아래서 
갓을 바루지 말라 했다. 벼슬이 오를수록 신독(愼
獨)을 다짐해야 한다. 떠나고 나면 모를 거라고? 
지린내가 어디 가겠는가.
♣ 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
(소설가)


◆ 세상을 뒤덮은 하얀 눈은
언젠가는 반드시 녹는다 ◆


- '러브레터'…
이와이 순지 감독, 나카야마 미호·도요카와
에쓰시 주연, 117분, 일본, 1995년.

  '러브레터(Love Letter)'는 
아련한 첫사랑에 관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약혼자와 사별한 한 여자의 관점에서는 
죽은 이로부터 배신을 당하며 아픔을 극복해가는 
이상한 치유기(治癒記)이다.
  영화는 눈 덮인 설산(雪山)에 가만히 누워있는 한 
여자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그녀가 와타나베 히로코
(나카야마 미호)다. 후지이 이쓰키라는 약혼자가 겨울 
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지 2년째이지만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남자의 죽음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이별 자체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약
혼자의 중학교 졸업 앨범 속 옛 주소로 "잘 지내나요?" 
하는 편지를 보내는 행동도 거기서 비롯되었을 게다.
  편지 보내기는 누군가가 읽어 줄 것, 
즉 소통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아무도 읽지 않을 편지를 구태여 우체통에 넣는 
사람은 자기 연민을 낭만적으로 극대화하는 사람이며 
과거와 결별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죽은 연
인을 놓아줄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러나 난데없는 
답장이 도착하면서 그녀는 새로운 국면 
앞에 마주서게 된다.
  답장을 보낸 사람은 죽은 후지이 이쓰키군(君)의 
중학교 동창이자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또 다른 후지이 
이쓰키양(孃)이다. 소년 이쓰키는 소녀 이쓰키를 남몰래 
사랑했으나 소녀 이쓰키는 그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나쳐버렸고, 그들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지 못
한 채 멀어져버린 관계이다. 약혼자가 눈 덮인 산에서 
죽어가면서 부른 노래가 약혼녀인 자신이 아닌 첫사
랑을 향한 것이라는 진실까지 알게 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내 남자의 진정한 사랑이 내
가 아님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를 마음 깊은 
곳 으로부터 비로소 떠나보내는 것 말고는.
  그녀는 그렇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실연(失戀)을 극복한다. 죽은 애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인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 
상황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세상을 뒤덮은 눈은 반드시 녹는다는 사실이다. 
흰 눈이 녹은 자리는 질척질척해진 잿빛이 
되었다가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갈 것이다.
♣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
(경희대 역사학 교수)


◆ 미국이 '자기들의 전쟁'이란
사실을 깨달은 날 ◆


- 불타는 진주만 -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에서 일본군의
공격으로 불타는 미 전함 웨스트버지니아. 미군
2390명이 전사한 이 공습으로 미국은 12척의 전함과
171대의 전투기를 잃은 반면 일본의 손실은 미미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영광스러운 고립'을 내세우며 유럽과 아시아
에서 벌어지고 있던 독일과 일본의 침략전쟁을 남의 
일인 양 한 발 빼고 바라보고 있었다. 1939년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 등 전쟁 물자 수출을 금지하자 일
제는 '대동아(大東亞)공영권'을 내걸고 자원 확보를 
위한 동남아 침략에 나섰다. "만약 결과와 상관없이 
싸우라고 지시한다면 6개월 또는 1년은 미친 듯이 
싸우겠다. 그러나 이듬해와 그다음 해에 대해서는 
정말 자신이 없다." 1941년 9월 해군 대장 야마모
토 이소로쿠가 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에게 털
어놓은 속내가 보여주듯이 일본은 승산 없는 장
기전 대신 기습을 통한 기선 제압을 노렸다.
  "당신네는 아직도 산불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래도 아직 한국인·만주인·중국인들
로 하여금 '자신의 싸움을 하라고 하라. 그것은 우리
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1941년 
1월 이승만이 미국 뉴욕에서 간행한 '일본 내막기'
에서 한 예언은 열 달 뒤 현실이 되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6시 하와이 진주만 북방 
440㎞ 해상에 숨어든 아카기(赤城) 등 6척의 항공모함
에서 183대의 함재기(艦載機)가 날아올랐다. 7시 49분 
일본어 '도쓰케키(돌격)'의 첫음절을 딴 공격 신호 '도
-도-도'가 무선을 탔다. 4분 뒤인 7시 53분 기습 성공
을 보고하는 암호 '도라-도라-도라'가 타전됐다. 이
후 두 시간 동안 일본의 제로전투기와 폭격기 그리
고 어뢰를 장전한 뇌격기들은 진주만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잠자는 공룡의 꼬리를 밟아 깨운
자충수였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립국이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미국은 판세를 뒤
엎었다. 1945년 8월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이 군국주
의 일본의 무릎을 꿇렸지만, 미국은 도쿄 전범 재판에
서 침략전쟁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잘못을 범
했다. 일본의 우경화가 가시화된 오늘 미국은 루스
벨트 대통령이 '치욕으로 기억될 날'로 명명했던 
진주만 공습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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