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대한 민국의 발전

알다가도 모를 대한 민국. 이 나라의 향방은?

핵무기 2011. 4. 29. 07:29

참 알수 없는 한국 사람들 
 
얼마 전에 영자지 ‘코리아.헤럴드’에 서울대 영문과 교수 김성곤 씨가 ‘Seven Enigmas of Korea
to Westerners’ 란 제목으로 두 번에 걸쳐서 쓴 글을 재미있게 읽고 공감하는 바가 크고 영자지
독자들만 보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탕해서 소개한다.
 
 첫째
수수께끼는 ‘촛불시위’에 대한 것 이다. 두명의 여중생이 미군병사의 운전실수로 사망했을 때 수 많은
군중들이 미국을 규탄하면서 대대적인 촛불시위를 벌렸다. 그런데 최근 서해 연평도에서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말미아마 희생된 2명의 해병대 병사와 2명의 민간인을 애도하며 촛불 시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니 이상하다는 것 이다.
 
 미국의 촛불행사는 가령 다섯살짜리 소녀가 변태성욕자에 의해서 살해되었을 때 또는 교내 총격사건으로
많은 학생들이 희생 당했을 때에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그들을 위해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서 철야 촛불행사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정부 또는 반미와 같은 정치적 목적으로 민중의 분노를 유발시키는 방편으로 촛불시위를
하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행사같이 보여져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두 번째의 수수께끼는 위기불감증
북한이 느닷없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는, 전쟁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한국의 좌파우파
정치인들이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는 것 이다. 집안 싸움은 나중에 하더라도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하에서는 마음을 같이 하여 북한규탄에 총력을 집중시켜도 모자를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한다. 더구나 한국의 좌경신문들은 북한을 규탄하기는커녕, 한결같이 이명박정부의 잘못과 미군과의
합동훈련이 잘못됐다고 비난보도 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북한의 위협과 적대행위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불감증이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군사도발이 자행될 때 마다 세계
외신들은 한반도 정세를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상황으로 또는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보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사태평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물으면 “우리는 위기와 더불어 살고 있으며, 위기는 우리의 일상적인 관례에 불과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는 것 이다.
 
 네 번째로
지적하는 한국에 대한 수수께끼는, 한국 학생들의 영어 실력에 관한 것이다. TOEFL 또는 GRE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획득한 학생이 영어를 쓰고 말하는 데는 완전히 낙제점일 경우가 많아 가닥을 잡을 수 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한국 학생들이 머리 좋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하고도 영어 발표력이 그렇게 무딘 것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들 한다.
 
 다섯째 불가사의는 이상한 병역 면제제도
운동선수들에 대한 지나친 관용이다, 특히 축구와 야구선수들에 대해서 더 한 것 같다. 2중 국적소지자에게는
병역의무를 엄격히 적용시키면서 운동선수들에게는 병역면제를 쉽게 해준다. 더구나 아마추어 선수도 아닌
돈 많이 버는 프로선수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에 대해서 의아해한다. 왜냐면 해외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한국의 국위를 크게 선양하고 있는 우수한 한국학자들에게는 그 같은 혜택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정부는 인간의 정신적 지적 가치보다는 미성숙한 사춘기 젊은이들의 육체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여섯 번째
수수께끼는, 한국인들의 자동차 운전습관에 관한 것이다. 특히 레인(lane)을 바꾸거나, 좌우로 회전할 때
깜빡이를 잘 키지 않는 버릇과, 캄캄하게 어두운 길을 가면서 헤드라이트를 키지 않고 달리는 차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외국인들이 의아해한다. 내 눈에만 잘 보이면 상대방이야 불편하던 말던 개의치 않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차 운전이 미국의 운전자들보다 오히려 유순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곱 번째
한국에 대한 미스터리는 이것이다. 끊임없는 집안싸움, 극심한 분열현상, 자연자원의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극한 대립상황 등 수다한 불리한 조건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룩한 것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기적 중에 기적이고 수수께끼중의 수수께끼라고 한다.
 
한편 김교수도 그의 두 번째 글에서 미국에 대한
수수께끼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미국의 대학교수들의 비좁은 사무실이다. 그렇게 거대한 나라에서 그렇게 널찍한 대학 캠퍼스를 두면서
교수들에게 배당되는 사무실이 왜 그렇게 협소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한다.
 
그것도 특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교수의 경우가 더 심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인가하면 사무실 안에서 편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란다. 그래서 미국대학교수들은 연구활동을 학교 사무실보다 각자 자택에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미국의 쓰레기 처리문제다. 한국만해도 벌써 오래 전부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많이 앞서있다는
미국이 아직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못하고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를 한꺼번에 취급하고 있음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모든 나라들이 각각 자기들 나름 데로, 다른 나라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들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서 때로는 창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있기도 하다면서, 김교수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공통성과 차이점을 두 편의 글에서 흥미 있게 비교 분석함으로 소통의 방편으로 삼았다.


                                                                                 (     옮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