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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포스텍 서양미술사 교수)
◆ 그녀 뒤에 펼쳐진 저 화려함들… 아뿔싸, 모두 거울 속 虛像이었네 ◆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말년 작 '폴리베르제르의 바'의 배경은 19세기 말, 파리 유흥가를 주도하던 나이 트클럽인 폴리베르제르다. 만찬과 함께 오페라와 코미디, 대중가요와 서커스 등 다채로운 공연을 제공하던 폴리베르제르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성업 중이다. 가슴이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술병과 과일을 늘어놓은 대리석 바 건너편에 서있고, 그녀의 등 뒤로 사람이 가득 들어찬 객석이 보인다. 왼쪽 위 구석의 삼각 그네와 초록색 양말을 보니, 관객은 지금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먹고 마시 며 서커스를 즐기는 중인가 보다. 그러나 뚜렷하게 그려진 여인에 비해 객석 모습은 윤곽선이 흐릿하 고 군데군데 흰 얼룩이 있다. 그림을 다시 잘 살펴 보면, 사실은 금테를 두른 큰 거울이 여인 뒤에 걸 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잡해 보였던 그림 속 공간은 알고 보니 거울과 바 사이의 비좁은 곳이 었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은 그저 거울에 비친 허상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림 속에 서있는 인물은 그녀, 바텐더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거울의 오른쪽에 그녀에게 다가온 남자가 비친다. 술을 주문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녀의 하룻밤 몸값 을 물을 수도 있다. 당시의 바텐더는 매춘부나 마찬 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객석을 차지한 손님들은 비록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라도 서 로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는 오히려 팔 려고 내놓은 술이나 과일과 비슷한 처지다. 마네 는 바 위의 술병 중 제일 왼쪽 병 라벨에 서명을 남겼다. 이름을 걸고 그림을 파는 그도 그녀와 별 차이 없다는 은밀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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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 36.7×25.1㎝,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편자'는 말발굽에 덧대는 쇳조각이다. 신을 신듯이 소는 논밭을 갈 때 쇠짚신을 신고, 말은 달리기 위해 편자를 낀다. 편자가 있어야 굽이 잘 닳지 않고 미끄러지기도 덜 한다. 그렇다고 개에 게 편자를 달아줄 일은 아니다. '개 발에 편자'는 얼 토당토않거나 생긴 꼴에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를 이르는 말이다. 말에 편자를 박는 작업이 흥미롭게도 우리 옛 그림에 더러 보인다. 그 일이 나무에 못 치는 것처럼 뚝딱 해치울 수 있다면 그림 소재까지 되지는 않았을 테다. 언뜻 소묘(素描) 같은 한 장면을 구경해보자. 사대부 출신으로 조선 후기 풍속화의 길을 앞서간 화가 조영석(趙榮 · 1686~1761)의 작품이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편자 다는 일에 나섰다. 바닥에 낫과 톱이 놓여 있다. 낡은 편자를 빼고 나서 맨 먼저 저 연장으로 헤진 말굽을 깎고 다듬 어야 한다. 그다음 맞춤한 편자를 굽에 대고 짧은 못으로된 징을 두드려 박는다. 겉보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말 다루기가 간단치 않다. 놀란 말이 행여 발길질이라도 하면 사람이 크게 다친다. 그림에서는 네 다리를 엇갈리게 꽁꽁 묶고 한 쪽 끈을 나무에 바짝 동여맸다. 때로는 묶은 다리 사 이에 주릿대를 끼어 꼼짝 못하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목을 비튼 말이 신음을 낸다. 머리를 마구 흔들다 다칠까봐 가마니를 깔아줬지만 이빨을 앙다문 채 버둥거리는 말은 애처롭다. 삿갓 쓴 사내가 나뭇가지로 을러보지만 그 역시 안타까운지 아 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황망한 상황에서도 신중한 이는 망건을 쓰고 쪼그려 앉은 노인이다. 그는 이 일을 많이 해본 숙수(熟手)다. 대갈마치로 징을 가늠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다. 징은 똑바로, 제대로 쳐서 박 아야 한다. 박고 빼고를 거푸하면 말이 죽을 노릇이 다. 그러잖아도 이 말은 겁을 먹었다. 말 생식기가 자라 그것처럼 졸아들었다. 일도 시키고 먼 길도 가야 할 말이다. 잘 부려 먹자면 손을 잘 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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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틸다 스윈튼·이즈라 밀러·존 C 레일리 주연, 112분, 영국·미국, 2011년. . 케빈(이즈라 밀러)은 '괴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그는 학교 체육관의 문을 걸어 잠그고는 그 안의 어린 학생들을 무차별 적으로 죽였다. 희생자 속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여 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 전 일어난 미국 코네 티컷 총기 난사 사건,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케빈이 살상에 사용한 총이 아니라 활이었다는 것뿐이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경악과 한숨, 애도와 비난이 흘러넘치다가 천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한 명의 여자가 검은 그림자처 럼 남았다. 그녀의 이름은 에바(틸다 스윈튼)다. 사람들은 그녀를 '괴물의 엄마'라고 부른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조명하는 것은 에바의 삶이다. 에바가 처음부터 엄마였던 건 아니다. 그 녀는 여행가였다. 아무 데도 정주하지 않고서 세계 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고 싶었다. 아기를 가지고 나서야 어쩌면 자기의 인생 계획에 누군가의 엄마 역할은 들어 있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어떤 여성 에게는 모성(母性)이라는 감정이 깊은 샘물처럼 무한하게 퍼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밖에서 보기에는 십대 후반의 평범한 소년인 것 같지만 아이는 자랄수록 점점 더 위험해져 간다. 엄마만은 그것을 안다. 아이가 유난히 괴롭히는 것은 바로 엄마다. 아이가 비뚤어진 방법으로라 도 메우고 싶었던 건 엄마 마음속의 작디작은 구멍이었을까. 그럼에도, 아이가 세상에서 격 리된 '괴물'이 된 후에 엄마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 죄책감과 괴로움에 하루하루 지옥 속을 살면서도 에바는 수감된 아들을 면회하 고 아이가 언젠가 돌아올 방을 정리해둔다.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사건이 일어난 2년 뒤 에바는 케빈에게 가까스로 묻는다. "이제는 듣고 싶어. 그때 왜 그랬니?" "그 때는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그가 왜 괴물이 되었는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는 케빈 에 대하여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의 원제)'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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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역사학 교수)
![]() 1946년 찐 고구마를 팔러 거리에 나온 어린 자매의 모습이 애처롭다. 당시 고구마는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역할을 했다.- 때론 통념이 역사에 반(反)한다. 년 반꼴로 기근이 들어 '목숨을 이을 수 있는 풀이 천 개'란 뜻인 구황천초(救荒千草)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던 조선 후기에 들어온 고구마의 역사 가 그렇다. "고구마가 처음 들어왔을 때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심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수령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와 아전들의 탐학(貪虐)으로 이를 심은 이가 곤욕을 치르게 되자 백성들이 심 기를 꺼려 지금은 극히 희귀해졌다." 1794년 호남 위유사(湖南慰諭使) 서영보(徐榮輔)가 정조에게 올린 보고서는 1763년 조엄(趙曮)이 일본에서 들 여온 지 채 30년이 못 되어 고구마를 찾아보기 어 려워진 이유를 꼬집어 말한다. 심지어 대원군 치 세에는 국고의 곡물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고구마 재배 금지 조치까지 내려졌다. '농자천 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내건 조선시대 농민의 삶은 연명조차 어려울 만큼 곤고했다. 역설적이게도 고구마가 구황식물로서 본래의 기능을 되찾은 것은 일제 강점기 들어서였다.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 2000정보에 불과하던 고구마 재배면적은 쌀 강제공출이 개시된 1941 년 4만 정보로 급격히 늘어났다. 만주에서 들여 온 비료용 콩깻묵과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주린 배를 채우던 민초(民草)들에게 고구마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식량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46년 11월 21일자 조선일보 는 미 군정이 굶주린 120만 서울 시민에게 배급 용으로 사들인 고구마를 주정 제조용으로 매각 한 사건이 몰고 온 파장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늘어나는 인구에 쌀 생산은 턱없이 부족했던 년 1인당 연간 고구마 소비량은 104.4㎏으로 정 점을 찍었다. 1968년에도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서미(薯米·고구마 쌀)'를 개발해 보급할 만큼 식 량 사정이 어려웠다. 그러나 '녹색혁명'을 가져다 준 다수확 통일벼의 육종에 성공한 1970년대 이후 1인당 고구마 소비량은 1980년 28.9㎏, 1994년에 는 5.6㎏으로 급격히 하강 곡선을 그렸다. 우리 나라 고구마의 역사는 영문 이름인 '단 감자( sweet potato)'와 달리 결코 달지 않았지만 몇 해 전부터 불기 시작한 다이어트 열풍으로 식탁에서 사라졌던 고구마가 다시 인기를 끄는 요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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