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어버이

어머니의 마음

핵무기 2012. 12. 25. 16:47

에미 "맘"

초인종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열었습니다.

딩동 딩동.”

....어머니.!”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시 어머님이

아무 연락도 없이 올라 오셨습니다.

허리가 휘도록 이고 지고 오신 보따리 속엔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 말린거며 젓갈들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무거운데 뭘 이렇게 많이 싸 오셨어요......."

갸가 정심은 굶고 안 살았나......

내사 마 퍼줘도 갸 볼 낯이 엄따."

가난한 살림에 자식을 다섯이나 줄줄이 낳아 기르느라.

자식들의 배를 곯린 게 두고두고 한이 된다는 어머니.

겉보리까지 닥닥 긁어 밥을 지어도.

어머니의 밥솥은 늘 자식들의 왕성한 식욕보다 작았습니다.

도시락이 모자란다 싶으면 갸가 동생들 다 챙겨 주고

지는 그냥 가뿐지는 기라......

심지가 깊어서 그렇지 돌맹이도 삭일 나이에

을메나 배가 고팠겠노,,,,,,

어머님이 보따리를 풀어 놓으시며 한숨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남편은 가난한 집 5형제 중의 맏이였습니다.

맏이라고 동생들한테 다 양보하고 허구헌날 굶으며 공부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20년이 지나도록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씻을 길이 없다고 하시며,

매번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에그. 내가 주책이다.”

그날 저녁 나는 흰 쌀밥에 굴비 구이에 코다리 조림 까지.

어머니가 가져 오신 찬 거리로 진수 성찬을 차렸고.

어머니는 연신 생선살을 발라 아들 수저에 얹어 주셨습니다.

아참, 어머니도 좀 드세요.”

내사 마 니그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기라.”

다음 날 어머니는 며칠 더 계시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자식며느리한테 짐이 되기 싫다시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 고집을 꺽을 수 없는 나는

어머니를 기차역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표를 받아들고 플랫폼으로 나가시려든 어머니가

가방 속에서 신문지로 돌돌 싼

꾸러미 하나를 꺼내 불쑥 건네 셨습니다.

이게 뭐예요. 어머니?”

암말 말고.갸 맛난 것 좀 많이 사 주구래이.”

신문지에 여러 겹 돌돌 말린 그것은 놀랍게도 돈뭉치였습니다.

니도 자식 키워보면 알겠지만 에미 맴이란 게 다 그란 기라.

내가 갸 배곯린 거 생각하믄 안적도.....

밥이....목에....걸려서리......”

자식들이 드린 알량한 용돈을 한 달에 만원도 모으고

이만 원도 모으고 해서 만들었다는 돈 백만원.

나는 울컥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바라 보며 가슴속 눈물을 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