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가요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

핵무기 2013. 5. 16. 09:54

이부풍-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

검사된 애인 못잊은 여인, 사랑에 속고 배신에 울고…

1965년 어느 봄날의 주말.

이날은 아침부터 진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무료한 나머지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뚝섬 경마장을 찾았다.

근데 거기서 나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님을 뵙게 됐다.

김동리 선생은 누런 서류봉투를 낀 채,

경마장 입구 버드나무 아래서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던 것이다.



김동리 선생은 누구나 다 아는 경마팬.

주말에 시간이 날 때는 오후 늦게 경마장에 온다고 했다.

봄과 여름이면 휘휘 늘어진 능수버들이 좋아서….

무척이나 반가운 나머지 선생을 가까운 한식집으로 모셨다.

능수버들로 에워싸인 버드나무집.

이 집은 민물장어와 파전 그리고 동동주가 유명했다.

능수버들이 휘휘 감기는 봄비 소리 때문일까?

약간 취기가 오른 선생은 한 곡조 뽑기도 했다.

외로운 가로등’이었다.

‘비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거리에서/

울리고 떠나간 그 옛날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김동리 선생이 생각날 때면 이따금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외로운 가로등’에 얽힌 사연을 쓰게 됐다.

1937년도 저물어 가는 겨울,

이날따라 비는 스산하게 뿌렸다.

작사가 이부풍(본명 박노흥)은 한잔 술에 기분 좋게 취해

약간 비틀대는 걸음으로 명동을 걸어 나왔다.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그는 이날 서민호와 함께 창설한 ‘빅다 가극단’의 기념 행사에

참석한 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가 명월관 앞을 지나는데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웬 여인이 우산을 받쳐 든 채 서 있었다.

그 여인은

명월관을 나오는 손님들의 얼굴을 일일이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부풍은 이날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밤에도 이부풍은 가로등 밑,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여인을 보자 뭔가

‘사연이 있는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 다음 다음날도 그 여인은 그곳에 있었다.

이날 밤.

이부풍은 그 여인에게 다가갔다.

“저, 결례되는 말입니다만….

매일 저녁 왜 이 자리에 계신지?”

그러나 여인은 말이 없었다.

그저 쓸쓸한 미소만 띨 뿐이었다.

가까이서 본 여인은 젊었다.

갸름하면서도 우수 띤 얼굴은 청초했다.

가로등 밑의 여인은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웠다.



이부풍이 용기를 내

다음날 낮에 한번 만나줄 것을 간청했다.

여인은 그러나 얼굴만 붉힐 뿐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부풍이 자신이 작가라는 걸 밝히자

그제야 여인은 응해 주었다.

이 여인은 이부풍의 짐작대로 깊은 사연이 있었다.

여인은 기생이었다.

가난한 애인의 학비를 대주기 위해 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잠시 화류계에 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정절만은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지켰다.

애인과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기 때문.

여인의 헌신으로 애인은 일본 와세다대 법과를 나와

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그러나 정작 출세를 한 애인은

이제 와서 여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기생이 아니라도 주위에 여인들은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처음엔 바쁘다는 핑계를 대다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모든 것을 과거사로 돌리자는 거였다.

그러나 여인은 애인을 단념하기엔 이미 늦었다.

몹쓸 게 정.

거기다 이 여인의 뱃속에는 애인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애인에게 알리기 위해

저녁마다 여인은 명월관 가로등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가 된 애인은 이곳을 자주 츨입한다기에….

이제 여인은 애인과 결혼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먼발치로라도 애인의 그리운 얼굴만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검사가 돼 있는 애인에게

공개적으로 불쑥 다가가기엔 이목도 있고 해서

그냥 애인과 마주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이는 제게 안 와도 좋아요,

제겐 이제 귀여운 우리 아기가 태어날 테니까요.

그래서 이 아이를 위해서도

이 사실을 그이에게 알려야 한다는 게 제 심정입니다.”

이부풍은 이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련한 여인을 위해 노래시를 쓴다.

노래시를 쓰는 그의 손이 분노에 못 이겨 파르르 떨렸다.

‘비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거리에서

울리고 떠나간 그 옛날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밤도 깊은 이 거리에 외로운 가로등이여

사랑에 병든 내 마음속을

마저 울려 주느냐.

희미한 등불 밑에 외로운 등불 밑에

울리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꿈도 짙은 이 거리에 비 젖는 가로등이여

이별도 많은 내 가슴속을

한없이 울려 주느냐.’

사랑의 배신과 그 당시 사회 풍조를 고발한 이 노래.

‘외로운 가로등’은

전수린이 작곡하고 황금심이 노래를 불러

우리 가요사의 명가요로 자리 매김했다.


황금심 - 외로운 가로등(街路燈)(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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