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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은 自尊自愛 하시라

핵무기 2016. 1. 18. 11:40

 

 

 

▶.위안부 할머니들은 自尊自愛 하시라.◀

 

마중가(조갑제.com Natizen )


위안부의 原罪는 조선 고종황제와 히로히토 일본 天皇이다.

당신들은 일제의 잔혹한 학대를 받은 위안부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보통국민이란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런 중국 속담이 있다. 한 천년고찰에 커다란 종이 있었는데 종의 이름이 三打鐘(삼타종)이었다.

즉 세 번만 칠 수 있는 종이란 뜻이다.

첫번 치면 복이 오고 두 번 치면 벼슬이 오고 세 번 치면 長壽(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욕심 많은 선비가 세 번 치고 나서 또 한번 더 쳤다.

그랬더니 늙은 중이 와서 그에게 말했다.

"네 번 치면 四大皆空(사대개공)이니 앞에 세 번 쳐서 이루었던 것이 다 백지화가 되었소.”

이 이야기가 바로 공자가 말한 過猶不及(과유불급)의 뜻 풀이다.

1) 水滿則溢 月滿則虧(수만즉일 월만즉휴) 주역에 나오는 이 말은 물이 차면 넘치고 달(月)이

차면 이지러진다는 말이다.

이번 한일합의 내용은 위안부들이 지난 세월 오랫동안 요구해 오던

“일본정부 사과, 총리의 사죄, 일본정부의 보상”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만하면 만족해도 된다.

만약 완벽하지 못하다고 앙탈 부리면 그때는 우리가 소인으로 된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평가할 때 공 7, 과 3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번 합의를 공 7, 과 3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어떤가?

2) 貴客과 禮儀凡節 외교부 차관이 친히 찾아 왔을 때 할머니들은 막말을 하면서 지극히

무례하게 대했다. 손님들은 우리나라의 외교를 위하여 불철주야 애쓰시는 고급 외교관들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그들을 거의 거지 취급했다.

당신들은 극단적인 언어로 막말을 했는데 너무 예의가 없었다.

마치 무식한 불량배 같았다.

당신들은 자신들을 한일 담판에 불러주지 않았다고 소리쳤고 담판에 참가한 외교부장이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일본 총리를 왜 못 만나게 하느냐고 야단치면서 일본 총리가 직접 와서 사과해야

한다고 노발대발했다. 묻겠는데 당신들은 지금 자신들이 대단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다 당신들의 손아귀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리석지 않아요?

당신들은 일제의 잔혹한 학대를 받은 위안부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보통국민이란 것을 잊으면 안 된다.

3) 당신들은 全部가 아닌 一部分 할머니들에게 直言(직언)하는 바 당신들 지금 忘乎所以(망호소이)하고 있다.

당신들은 일제 치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박해 받은 무수한 피해자들의 一部分에 불과하고 全部가 아니며 代表도 아니다.

당신들보다 더 억울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으며 위안부의 숫자도 한국은 16만 중국은 20만이다.

16만 한국 위안부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은 중국 에서 원혼이 되어 사라졌고 지금 살아 있어도 중국인들 속에 숨어 지내는 할머니들이 많다.

당신들은 그들에 비하면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일본정부와의 담판에 직접 참가하겠다고 傲慢放恣(오만방자)할 수 있는가?

得意忘形(득의망형)하고 있는 모습이다.

日帝는 1918년 시베리아 침략 때부터 위안소를 만들었다.

9·18 사변 후 일본군은 일본군 주둔지역인 中長鐵道 연선에 위안소를 설치했는데 여순, 대련, 영구, 무순, 심양, 본계, 안동, 사평, 공주령, 장춘, 길림, 하얼빈, 목단강, 가목사, 치치하루 등지에

약 100개 소의 위안소를 세웠다.

대대적인 侵華戰爭(침화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1932년 일본군은 대륙에서 처음으로 상해에 일본군 위안소를 건립하였다.

그들은 12세에서 40세 미만의 한국인 미혼여성들을 挺進隊(정진대) 이름의 성노예로 강제징집 하였다.

1941년 쏘·독 전쟁 폭발 후 일본 관동군은 30만 군을 집결하여 소련 침략전쟁을 준비하였다.

이때 關東軍 사령부는 조선 총독부에 2만 명의 위안부를 징집할 것을 지시하였다.

지시문에는 “강박적인 수단도 동원될 수 있음을 명기한다”라고 씌어 있다.

위안부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국가의 여성도 있었고 일본군들이 침략한 동남아 각국의 현지 여성들도 있었다.

물론 중국인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일본군 종군위안부에 대한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일본 작가 '센다 가코우(千田夏光)'다 그는 1973년 최초로 '종군위안부'란 책을 출판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 학자들도 연구를 시작하였고 중국인들도 위안부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智良、萍, 虔豪 등 학자들이 위안부에 관해 많은 논문과 저서들을 발표하였다.

4) 위안부의 原罪는 조선 고종황제와 히로히토 일본 天皇이다.

한국에서 위안부가 강제 징집된 시기는 일본 식민지 시절이고 일본의 괴뢰정부인 조선총독부 시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식민지가 된 것은 고종의 대한제국 시기이므로 위안부 피해자의 직접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을 반대한 3·1운동과 한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 括譴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국군포로, 납북선 요도호 납북승객, 그외 납북실종자, 북한의 도발로 인해 희생된 군인과 가족, 대한항공 폭파에 의한 사망자 가족 , 희생된 파월장병 가족 등에 대해 무한책임이 있다.

그에 비하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그 下位에 있다.

5) 背恩忘德하는 사람은 예로부터 不齒人類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怨望(원망)의 마음을 가질 경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십년 이래 당신들을 외국에서 모셔오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건강을 책임지면서 여생을 무사히 보내시도록 얼마나 노심초사 하는가.

리고 그렇게 많은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당신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마치 당신들의 비참한 과거를 책임져야 할 원죄가 있는 정부처럼 매도하고 있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여러분의 은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선진국이 되어 떳떳하게 콧대 높은 일본정부와 담판하여 위안부 문제의 사과도 받아내지 않았는가?

당신들은 감지덕지하여야 할 것이다.

감사를 모르고 은혜를 원망으로 갚으면 이원보덕(以怨報德)하고 背恩忘德(배은망덕)하는 인간으로 치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