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핵무기 2012. 7. 1. 19:30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12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KAIST 서양미술사 교수)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1~1669년경, 캔버스에 유채, 262×205㎝,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감격의 포옹 한쪽엔 불만 어린 長男이◆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1606~1669)는 화가
로서의 성공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어린 자식들에 뒤이어 아내마저 죽고,
연인과 불화를 겪으면서 파산을 맞이했던 것이다. 
'돌아온 탕자'는 그 쓸쓸했던 말년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신(神)의 
사랑과 용서의 깊이를 설명하기 위해 했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어떤 부유한 노인의 두 아들 중 작은아들이 미리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간 후,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거지보다 못한 꼴이 되어 다시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나가 그를 끌어
안으며 하인들에게 성대한 잔치를 명한다. 아들이 무슨 
짓을 했든, 아버지는 다만 잃은 줄 알았던 
자식을 되찾아 기뻤을 뿐이다.
  렘브란트는 이처럼 극적인 만남과 강렬한 용서의 순간을 
오히려 한없이 고요한 몸놀림과 온화한 빛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붉은빛은 그리
움에 짓무른 아버지의 눈가, 이미 늙어 뻣뻣해진 두 
팔로 감싸 안은 아들의 초라한 등과 누더기 신발, 
부르튼 발바닥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눈길을 끈다. 오른쪽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큰아들이다. 한 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성실하기만 했던 그는 문제아 동생을 그토록 
반기는 아버지의 처사에 깊이 상심했다. 렘브란트는 한때 
사치를 만끽한 '철부지 탕자'였지만 말년에는 '억울한 
큰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마도 
곧 돌아서서 큰아들도 따뜻하게 안아주실 것이다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 무명 선비의 항변 "이
초상화는 나를 잘못 그렸다" ◆


'서직수 초상' - 이명기·김홍도 합작,
비단에 채색, 148.8×72.4㎝, 179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각이 바르게 선 동파관(冠)이 제법 높다. 동정 없는 곧은 깃에 소매 둥근 도포는 품이 낙낙하다. 배꼽 아래에서 두 손을 맞잡아 소맷부리에 꽃무늬 같은 마디가 생겼다. 가슴에 두른 새까만 끈목은 납작하다. 돗자리를 밟은 버선발이 희디흰데, 버선코에서 살짝 들린 선이 맵시 난다. 보다시피 전신입상(全身立像) 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서 있는 인물은 드문 편이다. 이 사내, 어엿한 자태에 서린 기운이 녹록지않다. 요즘 스타를 찍은 화보보다 존재감이 훨씬 강하다. 주인공은 서직수(徐直修·1735~?)라는 문인이다. 사료를 뒤져봐도 그의 행장(行狀)이 잘 안 나온다. '진사에 급제한 뒤 관직에 오르지 않고 평생 서화 (書畵)를 즐겼다'는 기록이 고작이다. 놀라운 건 초상을 만든 화가들이다. 이명기가 얼굴을, 김홍도가 의관을 그렸다. 두 사람은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릴 때나 합작했던 궁중화원이다. 공경대부(公卿大夫)도 아닌 한낱 산림(山林)에 불과한 인물을 일류 화원들이 정성 들여 그린 이유는 미스터리다. 서직수는 그림에 소감을 남겼다. 그게 생뚱맞게도 불만에 찬 소리다. '유명 화가지만 한 조각 내 마음은 그리지 못했다.' 그 마음이 무엇이라서 이토록 평가가 인색할까. 서직수의 고백이 이어진다. '명산을 다니고 잡된 글을 쓰며 낭비했으나 스스로 속되지 않음을 귀 하게 여겼다.'초상에서 웬만큼 보인다. 숱이 적 은 눈썹은 멧부리처럼 솟았고, 치켜뜬 눈초리에 광채가 번뜩이고, 도드라진 입술이 무겁게 닫혀 있다. 모가 날지언정 속기(俗氣)는 없어 '오골 (傲骨·남에게 굽히지 않는 기질)'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굽실거리지 않는 기질이 저 꼿꼿한 입신(立身)에 깃들었다. 그의 품평은 화가의 명성에 주눅 들지 않았지만 화가의 붓질은 이름값을 한다. 하긴 유명과 무명이 무슨 상관이랴. 초상은 남아야 할 이름을 기린다.
인간이 만든 가장 높은 건물 …
한국 기업이 세웠다
삼성물산 이 지은 세계 최고층 건물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버즈두바이(Burj Dubai)가 4일 
문을 연다. 2005년 2월 착공한 뒤 4년10개월 만이다. 
12억 달러(1조4000여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 
160층이 넘고 비밀에 부쳐져 있는 건물 높이는 
818m 또는 824m로 예상된다. 기존 최고 건물인 
타이베이 101(509m)보다 300m가량 더 높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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