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전쟁 고아가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1)
서울중학 다니던 임종덕은
14살때고아가되어 소매치기 절도를 하면서서울역에 모인 100여명의 고아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순간 임종덕은 불과 몇초 사이에 뒷좌석의 가방을
소매치기 하고 사라지다..
그 장군은 625전쟁에 공군을 총지휘하는
제 5공군 사령관 스티브토마스 화이트 중장이며
그 가방은 당시 미 공군 특급작전계획 1급비밀문서가 던 가방이다.
미군은 즉시 한국경찰에 의뢰하여 경찰에서는
소매치기 왕초인 임종덕의 소행으로 알고 조사를 했다.
임종덕은 가방에 카메라와 서류가 있어서 서류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카메라는 남대문 시장에 팔았다고 하여
경찰이 쓰레기장에가서 서류를 찾았다,
우리 형님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하여
화이트사령관은 임종덕의 처지를 알고 임종덕을
하우스보이(하우스보이는 의식주가 해결되는 당시 최고의 자리다)로
가자고 하니 ‘여기 아이들 위해 떠날수 없다’는 말을듣고 화이트 장군이
그 고아들을 미군이 운영하는 제주도 고아원으로 보내고
임종덕을 자기 하우수보이로 채용했다.
그의 양아들이 되고 서울중학교를 재학하고
일요일에 양아버지 화이트장군을 따라 여의도비행장에 있는 미국교회에 갔다
이날 예배석 제일 앞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김정열 국방장관,
김신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화이트 장군과 그외 외국 고관들이 앉았다.
한국 공군군종감 임동선 목사의 설교에 감동받고
하나님을 마나서 평생 인생지주로 영적 아버지로 삼았다.
“지금 이 나라는 온갖 부정부패의 척결을 단행하지 않으면
이 자유당의 정부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당의 총재인 대통령에서부터 국방장관
그리고 군종감의 직속상관인 공군참모총장까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새파란 20대의 청년 군종목사가 거침없이 설교를 해나갔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임종덕은 마음 속으로 “저 목사님은 오늘 당장 형무소 가겠구나”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강대상에서 내려온 군종목사를 덥석 안으면서
“아주 훌륭한 설교였소,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모두가 다 깊히 생각하고
각자의 소임을 성실히 해 나가십시오”
하면서 다시 군종목사의 손을 잡고 목사로서 애로 사항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하여
그날 만난 하나님, 목사님, 대통령을 존경하게되였다.교회가 없어 미군 교회를 빌려쓰는데
하루빨리 우리공군도 자체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만 박사는 앞으로 서울 대방동에 건설될 공군본부 건설 때
공군 교회부터 먼저 건축하라고 공군참모총장에게 지시했다
어린 소년은 부모가 살해당한 조국을 떠날 수 없다고 하자
화이트장군이 더욱 감격하여 미국에 가서
조국을 도울 수 있다고 하여 미국으로 갔다.
-만춘 제공--계속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후서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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