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시구

사색할 시간만 있어도 행운이다

핵무기 2012. 7. 1. 20:23

사색할 시간만 있어도 행운이다




♣ 사색할 시간만 있어도 행운이다 ♣

- 아버지 소설 작가 김정현-
    지난해에도 그랬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르겠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를 때쯤이면 나는 번번이 이제 다시 가을이 되돌아오지 않는건 아닌가, 덜컥 밀려드는 둘려움에 가슴을 졸인다. 하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을이 돌아왔다. 이어서 겨울도, 다시 봄도 변함없이 돌아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느긋한 여유도 사실은 돌 아온 가을과 함께 되찾은 것이니, 이 어리석음이란.....굳이 핑계를 대자면 아무리 칠팔월이 폭염의 계절이라고는 하지 만 최근 몇 해 동안은 유난히 더 무더웠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역시 핑계 치고는 빈약하다. 나는 늘 바쁘다, 뭐가 바쁜지, 밤늦도록 무언가에 열중하다가 이른 새벽에 눈을 뜨는 경우에도 온몸은 파김치인데 정작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러니 다음 날에도 또다시 허겁지겁....환의 연속일 수밖에, 친구를 만나도 그렇다. 가슴은 답답하고 할 말은 목구멍까지 차 있는데도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술이라도 조금 들어가면 생각이 날까 싶어 잔부터 비워봐도 오히려 가슴은 더 답답해지고, 기 껏 불러낸 친구에게 머쓱하기까지 하다. 난감함에 술잔은 더욱 바삐 비워지고, 끝내는 그렇게 허둥거리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싫어 엉망이 되도록 퍼마신다. 그러다 눈을 뜨면 어떤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까맣게 먹빛이 되어버린 기억의 필름,결국 민망해서 한동안 친구에게 전화조차 못하게 된다. 나 자신을 잃고, 벗을 잃었으니 이제 나를 위로해줄 것, 무엇이남아 있을까, 꿈? 그래, 그것만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 어떻게든 추슬러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 도 포근한 잠자리에 드러누워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빠져들 때에나 달콤하다. 다음날 아침이면 어떻게 쓰러졌는지 기억 조차 아득하고,가뿐한 기분에 새벽의 맑은 정기를 담기는커 녕 오히려 어제보다 더 지뿌드드한 몸에,욱신거리는 머릿속 은 황량하기만 하다. 진저리처지는 악몽의 조각들이 드문드 문 끊어져 온전히 이어지지 않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벌써 십 년즘 전의 일이다. 그 무렵 나는 소백산 깊은 곳 어느 작은 암자에서 두 달 가량 머물렸었다. 한동안 암자에 머물고 싶다는 내게 노스님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 하나는 하루 세번 있는 예불에 반드시 참석해야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입맛이 없어도 하루 세 기 공양만은 무조건 제 때에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앞의 저건은 절집으로서 당연한 것이었고, 뒤의 저건은 밥하는 공양주 보살께 괜한 마음을 쓰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스님의 배려였다. 그 무렵 나는 해 질 녘이면 걸음마저 휘청거릴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몸도 마음도 몹시 피폐해 잇었 다. 그런 내게 절집에서의 생활은 시작부터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새벽4시면 아침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깊은 산중의 어둠을 가른다. 눈곱만 떼어내는 세수를 허겁지겁 하 고 법당에 들어 배拜를 올렸다. 그 뿐이랴, 산중에서는 왜 그 리 어둠이 일찍 찾아들던지, 산문 밖 도회에서라면 햇살이 제 법 남아 있을 오후 6시만 넘어도 벌써 저녁공양이 끝나고 유 일한 벗은 어둠뿐이었으니....그기다가 터가센 곳이라더니, 며칠 밤을 내내 산발한 귀신에 쫓겨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악몽에 시달렸다... 근기 없는 나물 반찬만으로 차려진 이른 저녁식사, 그리고 금세 찾아오는 허기, 방문을 열어봐도 온 통 캄캄한 어둠뿐이고 한 평 반 남짓의 낮은 천장 아래 고독 만이 깊어갔다. 소주 생각이 간절했고. 허망하나마 도시의 변잡함이 차라리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사흘인가 나를 만의 일이었다. 법당 앞마당에서 해바라기하고 있던 노스님께서 흘낏 내 얼굴을 쳐다보시 더니, "이놈아! 그럼 절집이 어디 시장터 주막처럼 만만할 줄 알고 기어 들어왔냐!" 라고 호되게 일갈하셨다. 주뼛거 리며 "굼자리가 너무 뒤숭숭해서요"라고 변명해봤지만, " 이놈아, 절집에 왔으면 할 일이라고는 절하는 것뿐이야, 저기 나한전에 들어앉아 백팔배나 부지런히 올려라"라고 하셨다. 참으로 신기하지, 처음에는 무릎이 후들거리고,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땀방울에 온몸이 흠빽 젖어들며 고통 만이 밀려왓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점 점 익숙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자 고요랄지 평온함이 랄지, 너무나도편안한 상태가 되어 고독도 갈등도 모두 온전히 삭여낼수있었다 새벽예불이 끝나면 고요한 방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무아 속에 내 영혼을 맡겼다. 아침공양이 끝난 뒤에는 휘적휘적 뒷산마루 토굴 앞까지 아침햇살을 벗 삼아 걸었다 토굴에 이르면 아무도 보는이 없는 뒷마당 개울가에 훌훌 옷을 벗어 던진 뒤맑은 찬물에 몸을 닦았다. 듣는 이도 없으니 토굴 안 부처님 앞에 향 하나 피워놓고 되는 대로 목탁을 두드리며 반야 심경도 외웠다. 다시내려 오는 길에는 저녁 참 방구들에 불 지필 마른나무 몇 조각 주워 질질 끌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사이 가분히비워 진 뱃속이꼬르륵겨리면 가다린 듯 찾아오는 예술과 점심공 양, 그리고 오후에는 나한전 고요 속에 혼자 백팔배를 올리 며 음을 비웠다. 어쩌다가 노스님이 내주시는 차 향기를 즐 기며 알아득기는 어려어도 고개는 저절로 끄덕여지는 법문 에 취해도보았다. 저녁예불과 공양이 끝나면 고즈넉한 산사 의 바람소리,이름 모를 산새,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밑도 끝 도 없는 사색의바다로 빠져들어, 모든 것을, 기어이는 나마 저도 잊을 수 있었던 시간들, 저질러놓은 인연이라는 속세 의 빚만 없었다면 정말 그대로 머리 깎고 들어앉아 내 허물 모드를 벗겨보고 싶기도 했었다. 딱히 쫓기는 일은 없었지만 그만 머물러야겠 싶어 산을 내려오던 날 슨ㅁ은 내게 호를 내려주셔다. '이 시是, 못 소沼 '세상에 빛이 될 칼 같은 글을 쓰라는 뜻이었다. 욕심도번민도 갈등도 없이 그저 담담하고 차분할 수 있었던 시간들. 아들아, 딸아, 살아보니 욕심이나 미움이 가득한 마음에서만 번민과 갈등이 똬리 트는 것은 아니더구나. 더구나 꿈도 성숙하지 못하고 길도 확연하지 않은, 그럼에도 살아갈 날이 더 많고 해야할 일도 많기만 한너희로서야 어찌 더욱 바쁘지 않으랴. 그러나 가끔은 모든 것을 놓아두고 고요한 사색의 사간을 갖는것이 내 삶의 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는 광기의 소란도 번민과 갈등을 달래는 한 방편이 되겠지만 그것은 단지 순간을 잊는 진 통제일 뿐인것 같더구나. 혹조금 무덥거나 한기가 느껴 진다 하더라도 고요히 방 안 한곳에정좌하여, 살포시 두 눈을 감은 채 네 몸이원하는 호흡으로 차분히 마음을 다 스려보라, 굳이 생각하려 하지도 말고, 네 지친 몸과 영 혼을 그대로 내버려두느라면조금씩 그것에 익숙해지는 어느 때에 네 스스로 한결 성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갈수록 저질러놓은 빚이늘어, 아비는 이제 다시 그때 처럼 산문山門에 들어 한가하게 마음을 쉴 수는 없을 것 같구 나, 그리고 방 안 한곳에 고요히 정좌할 여유도 잃어, 겨우 쌓 아놓은 책들이나 차분한 마음으로 읽으며 마음을 달랠까 한다. 젊을 때엔 사색의 여유를 누릴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만으로 도 축복이다. 인생이란 짧은 듯해도 초조해 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마음을 졸이지 말고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 너희들의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바쳐도 좋을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그것이 진정 아비의 보람이다.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내가 백석이되어" / 이생진 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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