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역사와 유래

범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근대국가

핵무기 2012. 10. 23. 15:18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26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서양미술사 교수)



- 로렌체티 '치안의 알레고리'…
1338~1340년, 프레스코화,
시에나 팔라초 푸블리코 소재..-


◆ "범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근대국가" ◆
  반듯하게 정돈된 농지가 끝없이 펼쳐진 풍요로운 땅 
위로 날개를 단 여인이 보기에도 섬뜩한 교수대(絞首臺)
를 손에 쥐고 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이 여인이 지배하
는 한, 누구라도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다. 
그녀가 악한들을 몰아내기 때문이다"라는 글귀를 펼쳐
들고 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등 뒤에 쓰여 있듯, 
'SECURITAS,' 즉 '치안'이다.
  이처럼 서양 미술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그 고유의 
상징물을 들고 있는 여인으로 의인화(擬人化)하여 표현
하는 알레고리의 전통이 있다.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의 화가 암부로조 로렌체티(Ambrogio Lorenzetti·
1285~1348)가 그린 이 그림은 '치안'을 위협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사회의 엄중한 처벌이 뒤따
른다는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치안의 알레고리'는 로렌체티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성했던 도시국가인 시에나 공화국의 의회로부
터 주문을 받고 팔라초 푸블리코, 즉 시청 건물의 '평화
의 방(房)'에 그렸던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알레고
리' 중 일부이다. 7.7×14.4m 크기인 직사각형 방의 세 
벽을 장식하는 벽화에는 우선 좋은 정부를 이루는 
덕성, 즉 평화·용기·인내·신중함·관대함·절제·
정의가 표현되었고, 그 결과로 이루어진 활기찬 도시
와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이 장엄 하게 펼쳐져 있다. 
바로 '치안'이 지배하는 곳이다. 반대편에는 나쁜 정
부의 악덕,즉 탐욕과 독재가 그려졌다. 물론 그 뒤에
는 범죄와 폭력이 판을 치는 도시와 새까맣게 불타
버린 농지가 보인다. 이 작품은 14세기 중반, 인간
의 구원을 오직 신(神)의 뜻에 맡겼던 중세로부터 
차츰 현실적인 정치의 역할을 인식하기 시작
하는 거대한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 손철주(미술평론가)의 옛 그림 옛사람 ♣

◆ 수염이 하나도 없는 이 남자,
어떻게 功臣에 올랐나 ◆


- '전(傳) 김새신 초상'…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53×81.3㎝,
1604년, 파주 93뮤지엄 소장.

  틀에 박힌 초상화의 꼴이 있다. 
머리에 번듯한 오사모를 쓰고, 가슴과 허리에는 
벼슬의 높낮이를 알려주는 흉배와 각대를 두른다. 
옷은 색깔이 다르더라도 깃이 둥근 관복(官服) 차
림이라야 한다. 손은 소매 안에서 맞잡은 채 장식
이 멋진 의자에 앉아 발은 여덟 팔 자로 벌리고 
눈은 차분히 한쪽을 바라본다. 이런 형식으로 
등장하는 모델이라면 그 정체가 뻔하다. 공신
(功臣)들로 보면 된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은 여러 특혜를 누리는 영광에다 최고
의 화가가 그린 초상까지 덤으로 받았다.
  이 작품도 공신상(功臣像)이다. 
흉배로 보건대 주인공은 문관 3품이다. 
구름 사이로 꿩을 닮은 백한(白�l)이란 새가 
활개를 친다. 이색지게 보이는 카펫이 바닥에 
깔렸는데, 조선 중기의 공신상에 흔히 나오는 
치장이다. 얼른 봐도 표정이 음전하다. 제법 
발그레한 입술을 힘주어 다무는 바람에 뺨에 
서너 개 주름살이 퍼졌다. 눈빛은 초롱초롱
하고 살빛은 고른 편이다. 그래서일까, 나
잇살이 보이지 않고 배젊은 느낌이 든다. 
한데, 코밑과 턱 아래가 민숭민숭한 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수염이 한 
올도 없다. 이분, 내시다.
  어떻게 내시가 공신이 됐을까.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의주로 피했는데, 
그때 호위하던 신하 80여 명이 '호성(扈聖)공신
'이 됐다. 1등에 이항복, 2등에 류성룡 등 명신(
名臣)이 있었고, 3등에 이례적으로 내시 24명이 
뽑혔다. 3등 공신이던 김새신(金璽信·1555~163
3)이 바로 이 초상 속의 내시로 전해진다. 김새
신의 행적이 자세하지 않아 학자들은 아직 추
정작으로 본다. 내시는 양반보다 수명이 길다
는데, 김새신은 여든 가까이 살았다.
  '내시 이 앓는 소리'란 속담이 있다. 
매가리 없는 목청으로 지루하게 내는 소리를 
뜻한다. 강해서 오래가기보다 오래가서 강한 
것도 있다. 최초의 내시 초상으로 길이 남을 
김새신의 묘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있다.


♣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
(경희대 역사학자)

◆日 국민은 욱일승천旗가 자랑스러울까◆

- 軍國의 추억?
진주만 공습 63주년을 맞은
2004년 12월 8일(일본 시간 기준), 옛 일본 해군
출신 퇴역 군인들이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욱일승천기를 앞세워 집회를 열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역사교과서 왜곡, 전범(戰犯) 세력이 합사
(合祀)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평화헌법 폐지를 
통해 전쟁도 벌일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 일
장기(日章旗) 달기와 일본 국가(國歌)인 기미가
요 부르기의 의무화 등 '애국심' 교육 강화, 
그리고 독도 영유권 주장….
  냉전이 붕괴된 이후 일본의 집권 세력이 
우경화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일본 우익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세(勢)를 불리기 시작
했다. 일본 경찰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종교집
단에서 폭력단까지 우익단체가 1700개를 넘고, 
우익 활동가도 '네트우익(ネット右翼)'이란 신
조어가 말해주듯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익
명의 네티즌까지 합하면 12만 명을 상회한다. 
이렇게 일본 우익이 급팽창하는 원인을 냉전 
붕괴에 따른 일본 국내외 정세 변동이나 경
제 침체에 따른 사회적 위기의식의 확산 등 
1990년대 이래의 우경화 추세에서 찾는 것
은 현상만 보고 본질을 못 보는 것이다. 
냉전이 붕괴된 1990년 이후 독일의 신
(新)나치주의자들도 세를 불리고 있
지만,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역사를 곡해(曲解)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영국과 
미국의 드레스덴 공습 60주년을 맞아 이를 '폭탄에 
의한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라고 주장하는 신나치
주의자의 망동(妄動)에 대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일침은 침략의 과거사에 분칠하는 
일본 정객들의 망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
렇다면 일본 우경화의 1차 책임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달리, 도쿄 전범재판에서 반공의 
이름으로 침략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미국에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못 된다. 
독일에서 신나치의 집회가 있던 날, 영미 공군의 
융단폭격의 희생자였던 드레스덴 주민들이 밤하
늘에 새긴 '이 도시는 나치에 몸서리를 친다'는 
촛불 글씨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익단체나 
정치가는 대중의 지지를 먹고 숨 쉬며 자라
난다. 일본 국민에게 묻고 싶다. 일본 군국
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
를 흔드는 것이 자랑스러우냐고 말이다.


-又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