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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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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서양미술사 교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이 자랑하는 대표적 소장품은 흔히 '엘긴 대리석(Elgin Marbles)'이라고 알려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이다. 1800년대 초,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외 교관으로 파견된 '엘긴 백작' 토머스 브루스(1766~ 1841)가 신전에서 떼어내어 영국으로 이송한 것이다. 아치볼드 아처(Archibald Archer·1791~1848) 가 그린 이 그림은 영국 정부가 1816년에 엘긴 백작의 소장품을 구입하여 1832년에 영국박물관에 전용 전시 실을 만들기 전까지 임시로 보관하던 방을 보여준다. 은은하게 빛나는 조각들 사이에 일반 방문객과 박물관 이사진 및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각자의 의견을 나 누고 있다. 오른쪽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가 바로 아처다. 그러나 이 작품 이외에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이후 엘긴 대리석은 1939년에 완성된 '두벤 갤러리' 로 옮겨졌다. 이는 20세기의 가장 성공한 화상(畵商)으로 손꼽히는 조지프 두벤이 엘긴 대리석을 위해 거금을 기부 하여 만든 전시실이다. 두벤은 뛰어난 수완과 안목으로 몰 락한 유럽 귀족들의 미술품 컬렉션을 사들여 미국의 백만 장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는 그림을 팔기 전에 묵은 때를 벗겨내고 반짝이는 덧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작이 훼손되어 종종 비난을 사기도 했다. 엘긴 대리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물관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을 새 갤러리로 옮기면서 두벤의 뜻에 따라 그들을 뽀얗게 세척했다. 그러자 많은 이가 아처의 그림 속에서 '꿀처럼' 빛나던 대리석의 고색 (古色)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사람이라면 '백옥'이든 '꿀피부'든 모두 좋겠지만 수천 년 된 조각에서 세월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낸 건 제자리에서 떼어낸 조각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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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 - 채용신 그림, 종이에 채색, 120.5×62㎝, 1914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그림 오른쪽에 주인공의 이름이 나온다. '운낭자(雲娘子) 27세 초상'이란다. 운낭자는 평안도 가산(嘉山) 관청에 딸린 기생으로, 본명은 최연홍(崔蓮紅·1785~1846)이었다. 나이 27세 때 홍경 래의 난(亂)이 일어나자 그는 살해된 가산 군수의 장례 를 치르고 군수의 아우를 보살폈다. 그 덕분에 기생 신 분을 벗고 논밭까지 하사받는 특혜를 누렸다. 초상화를 그린 때와 화가의 이름은 왼쪽에 씌어 있다. '갑인늑월석지사(甲寅�G�S力月石芝寫)'. 갑인 년은 1914년이고 늑월은 윤달의 옛말인데, 그해 윤달인 5월에 그렸다는 얘기다. 석지는 무관 출신의 초상화가로 당대에 솜씨가 으뜸이었던 채용신(蔡龍臣·1850~1941)의 호(號)다. 여인 초상화치고 이처럼 우뚝한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은 별로 없다. 기름을 발라 두상(頭上)에 딱 붙인 머리칼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다. 가르마 아래에서 눈 썹까지, 관상에서 일컫는 '천정(天庭)치레'도 매우 말쑥 하다. 눈매는 부드럽고 입술선은 또렷하다. 두 뺨에 뵐 듯 말듯 드리운 홍조가 수줍게 보인다. 고개를 한쪽으 로 약간 틀어 시쳇말로 '얼짱 각도'를 취했는데, 선정 성보다 정숙미가 두드러지는 것은 시선에 아무런 도 발이 없기 때문이다. 화가는 앞서 살다간 의로운 여 인의 이미지를 나름대로 상상해봤을 테다. 그의 붓 질은 염색(艶色)이 아닌 모성(母性)을 따라갔다. 운낭자가 안은 아들도 눈길을 빼앗는다. 발가벗은 몸통이 뜻밖에도 포실하다. 손에 노리개를 들고 이빨이 보이도록 활짝 웃는 모습이 당대의 우량 아로 선발되는 데 손색없다. 쌍가락지를 낀 운낭자의 손등도 도톰하긴 마찬가지다. 옥색 치마 위로 골이 훤히 드러난 가슴은 지나치게 탐스럽다. 아이의 발육을 보건대 젖이 잘 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당코 저고리의 동정과 치마 끝에 살포시 내민 버선발을 보라. 눈부시도록 새하얗다. 사뭇 신령스러운 기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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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니 뎁·위노나 라이더 주연, 105분, 미국, 1990년.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늑대소년'은 여러 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 (원제 Edward Scissorhands)을 연상시킨다. 두 작품 모두 옛 사랑의 추억을 손녀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일인칭 서사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 추억 의 대상이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것' 도 아닌 어떤 존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위손' 의 에드워드도 '늑대소년'의 철수도 맹목적이고 순수하게 한 여자만 바라보며 영원히 그녀를 기다리는 '현실에 없는' 남성이다. 영화 '가위손'의 에드워드(조니 뎁)는 '미완성 제품'이었다. 그를 인간으로 창조한 과학자(빈센트 프라이스)가 마지막 한 부분인 두 손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이다. 손바닥과 손등, 다섯 손가락이 달린 인간의 손 대신 가위 모양의 날카로운 금속이 그의 양팔 끝에 붙어 있다. 에드워드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위손이라고 부른다. 결핍에 의해 존재 전체가 명명(命名)되는 것이다. 동네의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가위손 청년은 대번에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가위손이 정원수를 멋지게 손질하고, 동네 여자들의 헤어스타일을 아름답게 매만지자 그 는 곧 경외의 대상으로 등극한다. 그러다가 오해에 휘말려 남의 집 자물쇠를 맘대로 열 수 있는 위험 한 인물로 인식되어 배척받기까지 그리 오랜 시 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기이한 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인데 인간들은 제멋대로 그를 판단하고 이용하고 유폐하는 것이다. 소년의 첫사랑 대상이었던 소녀 킴(위노나 라이더)은 노파가 되어서야 그 안전하게 봉인된 첫사랑을 조금 미안하고 많이 아름답게 회상한다. 에드워드가 첫사랑의 아픈 기억만을 가슴에 품고 머나먼 성(城)에 유폐된 동안 킴은 나이를 먹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 고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되기까지 '정상적'으 로 살아갔을 것이다. 인간 소녀의 일인칭 회 고담이 아니라 가위손 소년이나 늑대소년 혹은 타자의 시각으로 새로 쓴 이야기가 나온다면 꽤 흥미진진할 것 같은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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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역사학 교수)
![]()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 개다리소반 위에 놓인 양주병이 이채롭다. - 유사길(惟斯吉·위스키), 발란덕(撥蘭德·브랜디), 상백윤(上伯允·샴페인), 두송자주(杜松子酒·진),당 주(糖酒·럼)…. 1876년 개항과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서양 술의 한자 표기명이다. 청일전쟁 중이던 1894 년 겨울, 조선을 샅샅이 누빈 영국 여성 비숍은 "프 랑스풍 시계, 독일식 거울과 함께 양주(洋酒)에 대 한 기호가 젊은 양반 자제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고 꼬집었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청년 양반층이 외국산 박래품(舶來品)으로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식민지를 거쳐 광복과 함께 모두가 '양반'인 시민사회가 되었지만 사회적 상향 이동을 재는 척도는 여전히 겉꾸밈이었다. 지위 지향 사닥다리 의 꼭대기에 오르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담아 위스키를 들이켰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 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대중가요 '낭만에 대하여'에 나오는 '도라지 위스키'는 입에 풀칠조차 어렵던 1950~60년대 미군 매점(PX)에서 흘러나온 진품(眞品) 위스키를 마실 형편이 안 되는 대중의 과시욕을 달래 준 대체품이었다. 소주 주정 (酒精)에 색소와 위스키 향을 첨가해 만들어 위스 키 원액(原液)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이 술은 위스키라는 이름만으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이 그 사람이 일군 성공의 크기와 등치(等値)되던 압축성장의 1970년 대를 맞아 위스키는 출세 길을 좇는 이들에게 바라 는 사회적 지위를 얻은 듯 위안을 주는 마취제 역할 을 했다. 이런 갈망에 비례해 위스키는 원액 함량 2 0%(1977년), 30%(1978년), 그리고 100%(1984년)로 진화하며 고급화로 치달았다. 2002년 한국은 인구와 소득이 두 배 이상인 일본을 제치고 위스키 수입액에 서 세계 4위의 반열에 올랐으며, 2011년에는 17년산 이상 고급 위스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위스키 공화국'에 등극했다. 마시는 양주의 주령 (酒齡)을 자신을 드러내는 척도로 삼는 천박함이 낳은 서글픈 현실이다. 옛 선비들의 마음가짐인 수분지족(守分知足·분수를 지키고 만족을 안다)의 미덕이 그리운 오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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