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보고 즐길거리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이야기.

핵무기 2012. 12. 5. 09:47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34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서양미술사 교수)



- 해밀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1956년, 콜라주, 26×24.8㎝, 튀빙겐미술관.


◆ 쾌락이 넘실대는 이 집에서 살고 싶은가? ◆
  
  영국의 화가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1922~
2011)이 1956년에 런던에서 열린 전시회 '이것이 내일이다'
의 포스터를 위해 제작한 콜라주인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고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는 흔히 
최초의 팝아트 작품이라고 불린다.
  잡지의 광고 사진을 오려 붙여 만든 '오늘날의 가정을…'
은 할리우드 영화와 텔레비전, 만화책과 자동차 광고 등 대중
매체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한껏 부풀린 근육질 몸매의 
남자는 역기 대신 막대 사탕 '투시팝'을 들고 있고, 과장된 제
스처로 풍만한 '에스라인'을 자랑하는 여자는 모자 대신 전등
갓을 쓰고있다. 보기에는 우스꽝스럽지만 정작 본인들은 진
지한 이 남녀는 사실 누구도 쉽게 이룰 수 없으나 누구나 
현대의 이상적 육체상을 보여준다.
  화면 왼쪽에 있는 진공청소기 광고의 화살표는 '보통 
청소기는 여기까지밖에 닿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별 탈 없이 
'보통 청소기'를 쓰고 있던 소비자들도 이 광고를 본 순간부터 
청소기를 들어 옮기지 않고도 2층까지 청소할 수 있는 신제품
을 바라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가정을…'은 끝없이 
자극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 광고와 허황된 이상을 주입
하는 대중매체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각종 신제품이 
약속하는 표피적 쾌락이 지배한다.
  해밀턴은 결국 수백만명의 시청자가 동시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똑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동시에 울고 동시에 웃는 세상, 
누구나 똑같은 인스턴트 햄을 먹고,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똑같은 뉴스를 보고, 똑같은 몸매와 똑같은 신제품을 욕망
하는 세상이 과연 정말 그렇게 매혹적인지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
(미술평론가)


◆ 자기들 좋을 때 남도 좋으면 좀 좋으랴 ◆


- '야연(野宴)'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76×39㎝, 19세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은 전체 그림 중 아래쪽 일부임. -

  비탈길이 희끗한 게 눈 내린 자취가 여태 남았다. 
잔설(殘雪)을 털어버린 솔잎이 외려 싱싱하다. 남녀 
한 무리가 돗자리를 펼친 채 둘러앉았다. 겨울 들판의 
냉기는 아랑곳없이 그들은 지금 흥청거린다. 자리 한가
운데 놓인 화로를 보니 눈치채겠다. 육색(肉色)이 붉은 
고기 예닐곱 토막이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익어간다. 
갖은 야채가 소복이 담긴 접시, 술잔과 밥그릇과 종
지가 놓인 개다리소반, 따듯한 국물이 들어있을 
법한 탕기(湯器)가 그 곁에 나란하다. 19세기 
한양 어느 모퉁이에서 벌어진 회식 장면이다.
  척 봐도 남부러운 들놀이다. 
가짓수는 빠져도 먹을거리로는 잔칫상에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도살 금지령이 엄연하던 때다. 
화로에 쇠고기를 구우며 군침 다실 정도라면 한 벼슬 
꿰찬 부류가 아니고서야 어림없다. 곱게 차려입은 
기생을 둘이나 대동한 처지 아닌가. 
  이제 노는 가락을 훑어보자. 
왼편에 두건을 쓰거나 남바위 차림을 한 두 사내는 
털방석까지 갖췄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탕건 바람에 쾌자를 걸친 사내는 등 
돌린 기생이 건네는 고기를 입 딱 벌리고 받아먹는다. 
그는 두 손에 술병과 술잔을 잡았는데, 나잇살이 어지
간한데도 방석은 선심 쓰듯 기생에게 양보했다. 맞은편 
붉은 저고리의 기생은 먹을 차례를 얌전히 기다린다. 
이날 고기 굽는 수고는 젊은 축인 갓쟁이가 맡았다. 
가랑이가 드러나게 쪼그려 앉아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적인다. 신발 신은 채 자리에 뛰어든 오른쪽 사내
의 거동은 웃긴다. 뒤늦게 와서 고개를 빼들고 남은 
고깃점부터 헤아리는데, 참 채신머리 구기는 짓이다.
  먹을 게 생겨 복된 이들은 남이 눈 흘기는 줄 모른다. 
저들끼리 좋아서 이런 시조가 나왔다. '오늘도 좋은 
날이요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있어/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놂이 
좋아라.' 바라건대, 나 좋을 때 남도 
좋으면 좀 좋으랴.
♣ 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
(소설가)


◆ 이 남자들, 옷만 홀딱 벗은 건 아니었네 ◆


- '풀 몬티'…
피터 카타네오 감독, 로버트 칼라일·톰 윌킨슨
주연, 91분, 영국·미국, 1997년.

  영화 '풀 몬티(The Full Monty)'에서 제목의 뜻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인 동시에 '알몸'을 의미
하는 영국 속어(俗語)이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 중부의 
요크셔지역 셰필드이다. 한때 잘나가던 제철 산업의 본
거지였으나 1970년대 제철소가 문을 닫고 지역 경기가 
쇠락하면서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남
편이자 아버지, 한집안의 가장(家長) 역할을 수행하던 
중년 남성들은 충격과 실의에 빠진다. 싸구려 술을 퍼
마시고 주정을 늘어놓거나,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딴 데 한눈을 팔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 말고 
이들이 별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초조함과 무기력함에 깔려 납작해진 동료들을 
규합하는건 이혼남 가즈(로버트 칼라일)다. 그는 
전처前妻)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해 사랑하는 
아들을 만날 수 없는처지다. 
모여든 이들은 공장 감독직을 그만뒀지만 6개월째 
집에다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제럴드(톰 윌킨슨), 
자살 기도가 실패로 돌아간 롬퍼(스티븐 휴이슨), 과거
에는 잘나가던 댄서였지만 최신 춤은 전혀 모르는 흑인 
호스(폴 바버) 등이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후줄근한 
보통 동네 아저씨들이다. 여성 전용 클럽의 남성 
스트립쇼 댄서가 되기에는 황당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면면이다.
  스트립쇼를 결심한 아저씨들은 금세 조롱거리가 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던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치열
하게 맞부딪치는 대상은 세상의 편견이 아니다. 사는 
동안 한 번도 의식해보지 못한 타인의 시선이라는 권
력 앞에 나체로 무장해제되어야 하는 자기 자신이다. 
역사적으로 늘 '보는 자'의 역할을 담당해왔던 남성
들이 '보이는 자'의 입장이 되자 엄청난 혼란과 당혹
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들이 사회
적 편견과 내면적 머뭇거림을 넘어서 마침내 무대에
서 옷을 모두 벗어 던질 때 관객들은 작지만 신선한 
해방감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이 중년 남자들이 홀딱 벗어버린 것이 작은 천 
조각만은 아닐 것이다. '풀 몬티'. 누구나 무(無)
에서부터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
(경희대 역사학 교수)


◆ 쓰디쓴 '양탕국'이 '국민 음료' 되다 ◆


- 커피가 '귀족 음료'였던 시절
1930년 1월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 들어선 카페는 커피 향에 취한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모여들던 명소였다. -

  커피를 일컫는 우리말 단어의 변천사는 흥미롭다. 
1885년 상하이(上海) 유학 때 커피를 처음 접한 윤치
호는 한자음을 빌려 '가비(加菲·coffee)'와 '가배(加
琲·café)'로 적었고, 1898년 독립신문은 고종이 독(毒)
이든 커피를 마신 사건을 보도하며 '카피차'라는 한
글 표기를 썼다. 그러나 커피를 구경조차 못한 민
초(民草)들에게 이런 호칭은 와 닿지 않았다.
 1910년경 서울에서 땔감 시장을 운영하던 프랑스 
상인 부래상(富來祥·Plaisant)이 호객용 미끼로 제
공한 커피를 맛본 서민들이 붙인 '양(洋)탕국'이란 
이름 잘 말해주듯이, 시커먼 빛깔에 쓴맛이 나는 
커피는 호기심에 끌려 마셔 본 서양식 탕약에 지
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고히(珈琲)'라는 일본
식 명칭으로 불리던 커피는 광복 후 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6·25전쟁 때까지만 해도 
미군 전투 식량 'C레이션' 속의 커피를 회충약
으로 알고 먹을 만큼 생소한 귀물(貴物)이었다. 
  커피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다방이 
5000여개를 헤아린 1960년대 들어서였다. 
'오 마담 나를 보소/ 모닝커피 한잔 하소/ 
쌀 두 되 더도 넘는/ 세 식구의 하루 쌀값/ 
김 서방 헛배짱에/ 집 식구만 골탕판'이라고 
읊은 이용호의 시 '아침커피'(1966년 3월 16
일자 조선일보 게재)가 족집게처럼 짚어내듯, 
실업자가 거리에 넘치던 당시에 다방은 기죽지 
않기 위해 밥은 굶더라도 커피는 마셔야 했던 
고등 룸펜들의 아지트였다. 1970년대 중반까
지만 해도 신문 사회면에 심심치 않게 커피
에 담배 가루를 섞어서 파는 '꽁피' 사건이 
실릴 만큼 커피 값은 싸지 않았다. 1976년 
커피 맛의 황금비율을 맞춘 커피믹스가 
출시되고 두 해 뒤 커피 자동판매기가 
등장하면서 커피는 숭늉 대신 마시는 
국민 음료의 반열에 올랐다.
  1999년 미국 커피 업체 스타벅스의 한국 진출 
이후 커피 전문점 시대가 개막되면서 우리 커피의 
역사는 신기원을 열었다. 2006년 1인당 연간 250잔
이던 커피 소비량이 지난해엔 338잔으로 급상승했
다. 직접 커피를 볶아서 파는 로스터리 카페가 동
네 골목 안까지 파고든 것은 진한 에스프레소 향
기에 매료된 커피 애호가들이 늘어난 것이 주원
인이겠지만 세대를 불문하고 늘어나는 '나 홀로 
가구'도 한 몫 거든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