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천자(天子)나라―중원(中原)의 대제국(大帝國)이었다.
김민구: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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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사 교과서를 통해, 고려는 이웃 강대국의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자주와 투쟁의 끈질긴 호국 정신으로 이 땅을 지켜낸 5백 년 왕조였다고 배웠으나, 그 강역은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국경선의 지도만 보아도 답답하리만큼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교과서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의 진실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왜곡과날조와축소로 일관된 허위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교과서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짚어 보면서, 우선 가장 심하게 조작된 강역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고려 제국의 실체를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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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왜 역사공부를 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만 하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그 어원(語源)을 살펴보면, 독일어의 geschichte라는 단어는 일어난 일을 뜻하고, 영어의 history는 찾아서 안다는 그리스어의 historia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용어는 ‘과거에 일어난 일’ 즉 ‘과거에 있었던 사실로서의 역사’란 의미와, 또는 ‘과거 사실을 찾아서 안다’의 뜻이니,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와 이를 토대로 하여 역사가에 의해서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라는 두 가지 측면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가 과거 사실에 대한 바른 탐구라면, 역사학에서 말하는 역사가는 사료(史料)를 가지고 과거 역사를 탐구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사관(史觀)에 입각하여 서술하는 것이다. 사회 과학은 인간 활동의 구조적 측면을 연구하지만, 역사학은 인간의 삶의 변화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적 속성이 있다.
역사가는 사료의 해석과 기술에 그의 사관과 역사의식에 따른 주관적인 면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의 이해는 엄정한 과학적인 인식을 토대로 하여야 한다. 이러한 역사의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횡적으로 연결시켜 이해하고, 종적으로 변화하는 역사의 모습을 이해함으로써 역사적 사고력을 높여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 현재의 삶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우리는 역사 그 자체를 배우면서, 역사를 통하여 현대인들의 인간적 성숙을 도모하고자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일러 흔히 말하기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적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과거 세계와 현재 인간의 대화에 의한 만남의 광장이며, 이 만남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역사적인 사례와 교훈에서 지식과 지혜를 얻어 헤쳐 나가면서, 나아가 미래 창조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에 역사가 크게 이바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역사 학습을 통해 과거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의 성장을 기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사는 한국인의 역사이며, 한국사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역사 학습을 위해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대와 친일매국의 식민사관과, 민족분열주의 사관과 외세추종의 종속 사관, 그리고 반도사관과 야합한 왜곡․날조된 엉터리의 가짜 역사를 우리 민족사의 참으로 알고 있는 인식과 사고에서 벗어나, 이제야말로 도저히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는 잘못된 교과서부터 바로 잡아야 함은 물론, 민족사의 진실을 온 국민이 사실대로 바르게 알 수 있게 역사 바로 세우기의 범국민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사의 정체성과 역사적 능력을 확인하여 민족적 자긍심과 자존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제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민족은 절대로 흥할 수가 없는 법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인간도 개인이나 민족이나 할 것 없이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도 없을 것이다. 민족사는 그 민족의 뿌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고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과거를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현재를 알 수 있고, 현재를 알아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반드시 잃어버린 자랑스러운 민족사를 되찾아야만 한다. 이제 더 이상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사의 참 모습을 길이길이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 시대 우리들의 책무인 것이다.
2. 반도 식민사관을 버려야 민족사가 바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가장 먼저 교과서부터 당장 고쳐 국사(國史)를 바로 잡아야 하는 바, 민족사 교육의 첫걸음은 교과서에서부터 시작된다. 학교 교육은 사실로서의 역사에 접근하는 첫 걸음이기에, 탐구 과정의 경험을 축적하여 문제 해결의 능력도 계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을 교과서가 맡아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사는 평생 역사 지식의 잣대가 되므로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더없이 중요한 것인 것인데도, 우리 교과서는 그러한 역할은커녕, 왜곡과 날조로 변형된 축소지향의 패배주의 사관으로 서술된 내용뿐이어서 그저 답답할 뿐이다.
잃어버린 민족사를 되찾는 차원에서, 황제국가였던 고려제국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중학교 국사 교과서(92쪽)를 살펴보면 :「(태조의 영토 확장이란 항목에서) 태조는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청천강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선까지 영토를 넓혔다.」라고 나와 있으며, 같은 책 98쪽에 의하면,
……고려는 이 지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6성을 쌓아 고려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강동 6주를 회복하였고,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대하였다.……3차 침입 때에는 강감찬(姜邯贊)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龜州)에서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1019). 이 승리를 귀주대첩(龜州大捷)이라고 한다.
이후 두 나라는 전쟁을 중단하고 강화를 맺어 사신을 교환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국방 강화에 힘썼다. 현종 때에는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 주위에 나성을 쌓았고, 그 후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아 국경의 경비를 강화하였다.
라고 나와 있다. 참고로 다음의 좌우 지도를 비교해 보면서 어느 지도가 고려제국 실체의 진실인가를 각자 생각해 보기로 하자.
?지도①:중학교 국사 교과서 96쪽 ?지도②:멸망 직전의 고려 지도
위의 지도②는『고려사』《지리지(地理誌)》와『공민왕 실록』과『세종실록』등에서 공험진은 두만강 이북의 간도성에 있는 선춘령이며, 그곳에 윤관이 세운 비문(碑文) 있다고 기록해 놓았으며, 특히『세종실록』에 보면 “거양성 밖 선춘령에 윤관의 입비처(立碑處)가 있고 비문(碑文)에는 ”고려지경(高麗之境)“이란 넉자가 새겨져 있다.” 선춘령에서 수빈강을 건너가면 옛 성지(城址)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 강도(强盜)인 이케우치(지내굉:池內宏)란 자가 9성이 두만강 북쪽 7백리인 홍개호 부근인 사실을, 반대로 두만강 남쪽의 7백 리(함흥평야)에 있다고 날조(捏造)한 것을, 국내의 이적(利敵) 사가(史家)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지식에 익숙한 우리들은 흔히 우리 민족은 고구려와 발해 멸망 이후에 만주를 잃게 되었다고 하고 있는데, 과연 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줄곧 만주를 잃어버린 채 살아왔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고려는 물론, 발해와 요나라 그리고 금나라와 청나라 등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들이 계속 만주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19세기 말기와 20세기 초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도 연해주와 간도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한 번도 만주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아직도 고려 강역은, 평양 바로 북쪽의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도련포)로 이어지는 국경선의 콩알만 한 지도로 가르치고 있으며, 조선의 영토 역시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는 청나라가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긴 사실과, 일본이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버린 역사적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한 채, 오히려 이를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인식하여 잊어버리고 있는, 이러한 국사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소위 교과서에서 고려와 조선의 영토 교육을 하면서, 우리 선조들이 직접 편찬한『고려사』와『조선실록』에 수록되어 있는 기록은 보지 않고, 대륙의 민족사를 지워버린 일제의 반도식민사관을 맹신하여 추종하는 이적(利敵) 무리들이 교과서 편찬위원들이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여야 할까?
국사 교과서 편찬위원들이 친일 반도 식민사관을 버리지 않는 한, 민족사의 참모습을 보기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친일 매국의 식민사관으로는 천 년 만 년이 가도 민족사의 진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광복이 되었으나 아직도 국사 광복의 길은 요원하니, 하루속히 온 국민의 뜻을 모아 국사광복운동을 펼쳐 잃어버린 민족사를 복원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조상이 되려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임무수행과 그 사명에 매진해야만 할 것이다.
3. 고려사의 실체를 찾아 교과서의 내용을 바로 잡아야 한다.
고려는 결코 교과서의 지도처럼 그런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고려도경(高麗圖經)』을 비롯한 여러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는 만 리 대국의 천자나라였으니, 명실 공히 대륙의 주인공이었다. 국사 교과서에서처럼 함흥 이남의 작은 고려가 어찌 대고구려 제국을 이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백 번 말하는 것보다 다음에서 보는 지도③의 고구려의 영토와, 지도④의 고려 강역을 비교해 보자. 그리고 교과서의 지도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
?지도③:고구려 강역도 ║ ?지도④:고려 지명
위의 ③과 ④의 지도는 둘 다 우리 나라에서 제작한 지도가 아니다. 더구나 지도 ③은 중화민국 역사부도에 나와 있는 지도이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몰라서 그렇게 그려 놓았을까? 혹은 이웃인 한국을 위해서 그렇게 조작을 해 주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중국인들이 위 ③의 지도를 문헌적 근거 없이 함부로 고구려 영토를 크게 그려 놓았을 리는 만무하다. 문헌에 그렇게 전하니까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작성한 지도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교과서의 지도는 과연 믿어야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민족사는 얼마나 심한 왜곡(歪曲)과 날조(捏造)로 조작되어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민족사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채, 가짜를 참으로 알고 속아 지내왔기에 잃어버린 국사(國史)를 되찾는다는 차원에서, 하루 속히 조작과 훼손으로 망가진 고구려와 고려사를 되찾고 복원하는 일에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사를 제대로 알려면, 역사적으로 고의적인 지명이동을 시킨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지명이란 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의도적으로 지명을 옮겨 부른 데에 있는 것이다. 우리 국사와 관련하여 의도적인 지명 이동을 알 수 있는 것은 근자에 와서 현 중국 정부 차원에서 만든『중국고금지명대사전』(1930년대 초에 편찬)을 참고하더라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사가 어떻게 얼마나 날조(捏造)․훼손(毁損)되어 왔는가는 지명의 변천사를 보더라도 능히 상상의 짐작이 가능할 것인 바, 다음의 지도를 통해 압록강의 지명 이동을 보면 과거 대륙의 지명을 동쪽으로 계속 이동시켰던 조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니, 아래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지도⑤:압록강의 지명 이동 지도
앞의 지도 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압록강의 지명 이동을 보면, 지도의 가장 왼쪽 동그라미 속의 1번 위치에서 계속 2, 3, 4 번의 위치(현재의 압록강)로, 즉 동쪽으로 계속 지명을 이동시켜 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곳은 위 지도의 2번의 지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위화도 회군의 지점을 현재의 압록강에 위치한 위화도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역사적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것은 위화도 회군과 관련하여 정확한 그 위치를 비정해 보는 것이니, 1388년(江陵帝 14) 5월, 명(明)의 전진 기지로 변한 요동 정벌에 나섰다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서 이 땅의 사학자들은 현 압록강 하류에 있는 섬이 위화도라고 우기고 있지만, 위화도는 절대 섬이 아니다. 위화도(威化道)를 위화도(威化島)로 변조한 것이다. 그러니까 위화도는 위화도(威化島)가 아닌 위화도(威化道)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교과서에서는 아직도 식민반도사관에 의해 현재의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威化島)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위화도의 위치는 현재의 대륙의 황하강이 있는 곳이다. 얼른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것이나 위 지도는 국내의 어느 국수주의자가 그린 지도도 아니고, 보다시피 외국인이 작성한 지도임을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동시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도에 나타난 용어를 볼 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래의 지도임도 알 수 있으니, 외국인도 이렇게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엉뚱하게 우리들만 친일 매국사관에 계속 속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통탄스럽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백두산과 두만강에 관한 지명 이동도 마찬가지이니 내친 김에 다음의 지도를 한 번 더 보기로 하자.
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도⑥⟦1935년 하버드대학 작성 지도임⟧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이상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앞의 지도 ⑥은 국내의 어느 만화가와 같은 사람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린 지도가 아니고, 1935년에 미국 하버드 대학의 Albert Herrmann 교수가 작성한 지도이다. 그는 동양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하여 우리 교과서와 다르게 작성한 것일까?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이 심심풀이로 이렇게 작성해 보았을까? 아니다. 하버드는 이름 없는 사이비 대학이 아니란 것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다시피 하버드는 세계 최고 명문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대학이 아니던가? 그 대학의 교수가 작성한 것이란 말이다.
그가 작성한 지도는 믿을만한 것인 바, 이를 뒷받침 하듯 조선의 탁월한 지리학자였던 김정호 선생이 작성한 대동여지도와 비교해 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빈틈없는 역사적 고증을 통해 작성한 지도인가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Albert Herrmann 교수가 작성한 지도는 적어도 왜곡 날조된 조선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데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따름이며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면 다음에서 김정호 선생이 작성한 대동여지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만약에 교과서의 지도가 맞다면 김정호는 엉터리 지리학자가 되는 것이고,
?지도⑦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가 맞다면 엉터리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궁금증은 김정호 선생이 과연 지리에 어두워서 백두산과 압록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잘못 작성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교과서에서 대동여지도를 작성할 때 백두산과 압록강의 위치를 잘못 그렸다고 말하지 않고,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선생이 천신만고 끝에 작성했다고 떠받들고 있을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기이한 일이 아닌가?
어쨌건 간에 김정호 선생은 조선이 낳은 걸출한 지리학자였다. 이 위대한 학자가 작성한 대동여지도의 참모습을 통해, 조선시대의 우리 영토를 확인하는데 있어 그 고증을 삼는 일에 활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저 간악한 일제가 조작한 가짜 대동여지도를 교과서에 소개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한가?
또 한 때 우리 정부에서는 10만 원 권 지폐를 만들려고 했는데, 김구 선생의 초상화 또는 이승만과 같은 제 3의 인물 등을 운위하다가 중단되었지만, 10만 원 짜리의 이면에는 김정호 선생의 원본 대동여지도가 아닌, 일제가 조작한 그것도 독도가 빠져있는 대동여지도를 도안으로 넣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었던가? 참으로 김정호 선생은 물론 지하에 계신 모든 선열들께서 통곡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앞의 두 지도를 통해 본 바와 같이 압록강의 위치는 수차례에 걸쳐 계속 동쪽으로 이동해 왔고, 백두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버렸다. 그러면 왜 지명이 이동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 것인 바, 한국의 영토 축소 조작에는 지명의 이동을 통한 조작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앞에서 열거한 여러 지도를 살펴볼 때, 한국사 본질의 훼손을 위해 과거에 엄청난 한국사의 축소와 왜곡, 그리고 날조의 갖은 방법으로 잘라내고 깎아내고 하는 조작이 심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왜 지명을 이동시킨 조작이 있었는가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나 관심을 가져보지 못했었다. 이는 사학자들의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우리의 국사 회복을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기 위해서는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명 이동에 관한 역사적인 고찰의 연구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압록강과 백두산의 그 지명을 이동시킨 지도만 보더라도, 후대로 넘어오면서 얼마나 많은 왜곡으로 인해 변형된 엉터리 역사로 변질되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가짜 역사에 함몰된 채, 과거의 역사무대를 논할 때마다 언제나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의 위치를 고정시킨 기준에서 해석하다 보니까 우리 역사의 무대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륙의 지명을 마치 수학적인 공식에 따라 대입을 하듯이 옮겨놓은 사실을 외면하고서 어찌 민족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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