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말

소통의 언어 고통의 언어

핵무기 2013. 11. 5. 16:28

소통의 언어 고통의 언어

           

◆소통의 언어 고통의 언어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고 이윤기씨의 산문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의 고향에선 어려운 말을 많이 썼다.

예를 들어 "안항(雁行)이 몇인고?"라는 질문은

"형제자매가 몇이냐"는 뜻이다.

다른 지방에서 장가오는 새신랑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사람대접을 못 받았다.

그는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다가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소통의 언어가 아니라 저희 동아리를 과시하고

타인을 소외시킬 목적으로

악용되는 권위적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반평생 글만 써왔는데도 군청에만 가면 쩔쩔매는 경험을 하자

글을 쓸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묻는다고 했다. '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통섭의 시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생각의 탄생'의 저자 루트 번스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학자는 오로지 수식 안에서,

작가는 단어 안에서,

음악가는 음표 안에서만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언어의 칸막이를 칠 때

언어는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집'이 아니라

'권력의 집'이 돼버린다.

'권력의 언어'가 횡행하는 대표적 분야 중 하나가 금융 산업이다.

난해한 법률 용어로 가득 찬 은행 대출 약정서는

"절대로 읽지 마시오!"라고 외치는 듯하다.

최근 나온 '심플(Simple)'이란 책은 은행과 관공서의 용어가

어려운 원인으로 법률제도를 지목한다.

법률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훨씬 큰 문제가 생겼다.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결국 요즘 금융회사들은

'권력의 언어'를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대구은행은 '요구불계좌'를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계좌'로 바꾸는 등 130개 용어를 고쳤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상품 약관에서 고객이 가장 궁금해하는

보험금 지급 사유를 뒤에 슬그머니 숨기지 않고

맨 앞에 배치하는 내용의 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을 내놓았다.

법조계에서도 대구지법이 판결문을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쉽게 쓰자는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무한 곳이 있다.

바로 정치판이다.

그곳엔 여당의 언어,

야당의 언어가 있을 뿐,

국민의 언어는 없다.

날로 팍팍해지는 살림살이에 국민은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

정치판은 '대선 불복'이니 '헌법 불복'이니 하며

그들만의 언어로 끝없는 싸움을 벌인다.

거기서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배제의 도구이다.

정치판이란 게 정권을 놓고 경쟁하는 곳이니만큼

한 목표를 추구하는 다른 조직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판 역시 나라 잘되게 하자는 한 목표를 공유하지 않던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여야에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라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의 언어를 이해하라고 요구할 권리는 있지 않을까.

그들은 투쟁의 언어를 쓰는 것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은 그런 언어에 신물이 났고,

결국 커뮤니케이션은 증발했다.

권력의 집은 더욱 높아지고,

그곳의 말은 갈수록 외계어를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