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전쟁의 아픔

北 다녀온 김홍업 인터뷰

핵무기 2012. 5. 22. 12:50

 

 

北 다녀온 김홍업 인터뷰

"김정일 장례식 위해 보도블록까지 빼서 털고 다시 끼워넣어"
"玄회장, 금강산 件으로 北 관계자들 밤새 괴롭혔다더라"
北 "김정은이 악수 청하기 전 먼저 손 내밀지 말라" 당부
백화원초대소, TV채널 70개… 한국 뉴스도 다 나오더라

 

김정일 조문차 지난 26~27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김홍업<사진>전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이 28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방북 비화를 털어놨다.

김 전 의원은 "평양 시내는 장례식 준비를 위해 길 닦고 청소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도로 틈새까지 다 닦고 보도블록도 빼서 털고 다시

끼워 넣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28일 장례식 당일에는 눈이 내렸다. 북한은 '78년 만의 폭설'

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27일 오후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났을 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금강산 사업 좀 잘하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김 부장에게 "현 회장에게 밤새 시달렸다"고 말했고, 이에 김 부장은 "우리가 안 하려는 게 아니다"는 식로 답했다고 김 전 의원은 전했다.

또 조문을 한 26일 저녁 6시 20분 금수산기념궁전 조문에 앞서 북측 원동연 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 부위원장을 만날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들었다고 했다. 원 부부장은 이희호 여사 등 조문단 일행에게 "김정은 동지가 먼저 악수를 청하기 전에는 먼저 손을 내밀지 말라" "이 여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소지품을 가져가지 말라 볼펜·지갑 다 가져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김 전 의원은 전했다.

― 김정은 을 본 느낌은.
"유심히 봤는데 표정이 굉장히 침울했다. 김정은이 먼저 손을 내밀고 '와주셔서 감사하다. 먼 길 오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상심이 크시겠다'고 했다.

얼굴은 아직 앳돼 보였다. 피부도 좋았다. 키는 175㎝까진 아니지만 생각

보다는 커 보였다. 풍채도 아주 좋았다."

―북측 인사들이 김정은을 대하는 태도는.
"북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김정은을 '위대한 대장 동지'라고 부르며 김일성, 김정일과 동격으로 대했다. 김영남·김양건 등 원로들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김정은)한테 얼마나 깍듯이 하던지….

내 생각엔 김정은 체제가 안착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북한은 왕조 아니냐. 옛날에 어리다고 임금 못 했느냐."

―조문 과정을 자세히 말해달라.
"금수산기념궁전에 도착해 차에서 한 10분 기다렸다. 내부에 들어가니 다른 조문 행렬을 스톱시키고 우리를 조문하게 했다. 점심 먹고 난 후부터 조문 갈 때까지 계속 초대소 안에서 대기했다. 그 시간이 길었다.

김정은이 나오는 시각에 맞추려고 그랬던 것 같다."

―금수산기념궁전은 가보니 어땠나.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다. 사람들 얼씬도 못하는 곳이다. 내부는 생각보다 작았다. 계속 추모 음악 나오고 웅웅거려서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해외 교포도 꽤 조문 왔더라. 미국서 친북 활동 했던 사람도 하나 만났다.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지금 미국 사는 사람이다."

―백화원초대소에 묵었는데….
"그곳에선 위성 TV 채널만 70개가 나왔다. 한국 뉴스도 다 나왔다. 어머니가 묵었던 101호는 스위트룸이었다. 방 입구에 대기실이 있고

침실이 따로 있었다.

우리 일행 식사는 101호 앞 별도 방에 차려진 원탁에서 했다. 그 원탁은 아버지께서 6·15 때 오셨을 때 아침을 드셨던 바로 그 식탁이라고 했다. 식사는 북측 사람 없이 우리끼리만 했다. 음식은 못 먹어본 북한 음식 등 가짓수가 굉장히 많았다. 요구르트도 빨아 먹는 요구르트, 떠먹는 요구르트 등 가지가지로 나왔다. "

―평양 시내는 어떻던가.
"자동차를 타고 지나만 갔다. 시내 곳곳에 마련된 조문소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주민들은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북에 가기 전에 우리 정부에서 특별히 당부한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정부 관계자가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끼리 갔다가 임의로 (북한 측에)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하다가 또 빨갱이 소리 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그걸 걱정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 인사가 갔다가 조문 요구가 들어오면 안 할 수도 없고 하니 안 간 것 같다."      -받은 글 -